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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의약품 부족 문제 본문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의 구조적 원인
2024년 1월 지진이 발생한 노토반도가 위치한 호쿠리쿠 지역(도야마, 이시카와, 후쿠이 등 3개 현)은 일본 유수의 의약품 제조기업들이 밀집된 곳이다. 특히 도야마현은 ‘약(くすり)의 도야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지역 의약품 생산액은 2022년 6078억 엔으로 전국에서 5번째로 큰 규모이며, 인구당 의약품 생산액 및 제조업체 수는 전국 1위이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여러 의약품의 생산 중단 또는 제한이 이뤄졌다. 특히 의료용 안약 점유율 1위인 산텐제약의 녹내장 및 안압상승증 치료에 사용되는 ‘코솝트미니 복합점안제’는 출하 정지가 4월까지도 이어진 상황이다. 산텐제약은 지진 발생 이전 노토 공장에서 연간 생산량 4억 개 중 3억 개의 점안제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번 지진은 일본 내 의약품 공급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 한 요인이 됐지만, 사실 일본에서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는 그 이전부터 장기적으로 진행돼 온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이다.
장기화되는 의약품 부족 문제
일본제약단체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 제조업체가 모든 주문에 응할 수 없는 ‘한정적 공급’, ‘공급 중단’이 된 의약품은 2024년 3월 기준 4064개 품목에 달했다. 이는 약가 등재된 전체 의약품의 23.9%며, 제네릭 의약품으로 한정할 경우 32.1%까지 상승한다.
이런 상황은 국회에서도 다뤄졌다. 2023년 11월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서 이사 신이치(伊佐進一) 중의원 의원은 의약품 부족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 질의하며 실제 경험을 예로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이 감기에 걸렸는데, 처방받은 기침약이 약국에 없었고 처방전을 들고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겨우 한 약국에서 어른용 약을 잘게 부숴서 아이용으로 조제해 줬다는 이야기였다.
2023년 8~9월 일본의사회가 전국 570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약품 공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74%가 '약국으로부터 재고 부족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원내 처방 시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 상위 10개 품목 중 6개 품목은 진해제, 거담제, 감기약이 차지했다. 이외에도 지혈제, 당뇨병 치료제, 항우울제, 항균제 등의 부족을 호소하는 의료기관이 많았다. 진료과목별로는 이비인후과와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92%가 약품 부족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2023년 8~9월 설문조사: 일본 내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원내 처방) 상위 10개 품목>
순위 | 구분 | 의약품명 | 건수 | 약효분류명 |
1 | 내복약 | 메지콘정 15mg | 600 | 진해제 |
2 | 주사제 | 톨리시티 피하주사 0.75mg 아테오스 | 241 | 기타 호르몬제(항호르몬제 포함.) |
3 | 내복약 | 오그멘틴 복합정 250RS | 223 | 주로 그람 양성-음성균에 작용하는 것들 |
4 | 내복약 | PL 배합 과립 | 215 | 종합감기약 |
5 | 내복약 | 푸스코데 배합 정제 | 205 | 진해제 |
6 | 내복약 | 아스토민정 10mg | 199 | 진해제 |
7 | 내복약 | 아벨린 정제 20 | 190 | 진해거담제 |
8 | 내복약 | 무코다인정 250mg | 184 | 거담제 |
9 | 내복약 | 카로날정 200 | 157 | 해열진통소염제 |
10 | 내복약 | 트랜사민정 250mg | 157 | 지혈제 |
*주: 1개 의료기관 당 10개 품목까지 선택 가능
[자료: 일본의사회]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의 원인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의 구조적 원인>
품질관리 부정 문제 | 2021년 이후 제네릭 의약품 제조사의 잇따른 품질관리 불량 문제로 생산∙출하가 크게 감소 |
소규모 제약사가 많은 시장 구조 | 중소 규모 제약사들이 많은 일본 제네릭 시장은 부족한 의약품 생산을 급격히 늘리기 어려운 구조 |
매년 인하되는 제네릭 약가 개정 | 의약품 단가가 매년 인하되는 정부의 약가 개정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생산을 확대하지 않는 경향 |
일본 제네릭 의약품 부족은 대내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2021년 이후 잇따라 발생한 제약사의 품질관리 불량 문제를 들 수 있다. 2020년 고바야시화학공업(후쿠이현)이 제조한 손발톱무좀 등 치료제에 수면유도제 성분이 혼입돼 건강 상의 피해가 드러나면서 2명이 사망했다. 이후 다른 제약사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 적발돼 2023년 4월까지 총 15개 제약사가 업무정지 또는 업무개선 명령을 받으며,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크게 감소하게 됐다.
이런 품질관리 불량 문제는 '제네릭 의약품(후발의약품) 장려 정책'에서 촉발됐다고 평가된다. 일본 정부는 고령화에 따라 불어나는 의료비 억제를 위해 2013년 47%였던 제네릭 의약품 사용 비율을 2020년까지 유럽과 미국 수준인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제네릭 의약품을 일정 비율 이상 처방하는 병원, 약국의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 등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많은 제약사들이 제네릭 수요에 대한 기대를 안고 증산을 서두르게 됐다.
하지만, 증산을 위해서는 제조설비 확충, 원료의약품 조달, 전문 인력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고, 급격히 생산량을 확대하다 보니 품질관리가 허술해져 결국 잇따른 제조 비리로 이어지게 됐다.
아울러, 일본 제네릭 의약품 시장은 제약사들이 규모가 작은 기업이 많은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이다. 2023년 기준 제네릭 의약품을 주로 취급하는 제약사 105개사 중 86개사인 약 82%가 중소기업이다. 또한, 제네릭 의약품을 공급하는 190개사 중 9개사가 시장(공급량 기준)의 50%를 점유하고 나머지 50% 시장을 규모가 작은 181개사가 분할하고 있다. 이런 소규모 제약사들이 많은 일본 제네릭 시장은 부족한 의약품 생산을 급격히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더해, 제네릭 의약품 단가가 매년 인하되는 정부의 약가 개정으로 제약사들의 이윤이 크게 줄어 적자 상태가 지속됐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생산을 확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게 됐다.
<일본 의약품 공급 불안의 구조적 원인>
일본약업무역협회(JPTA, Japan Pharmaceutical Traders’ Association) 후지카와 이치로 회장 인터뷰
Q. 일본에서 어떤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인가?
A. 의료용 의약품(ETC) 중 감기약(거담제, 해열제), 진정제가 특히 부족하고, 일반의약품(OTC)는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덜한 상황이다. 이런 부족한 의약품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2일 치만 받는 경우도 많다. 또 일반의약품의 경우에도 구매 개수에 제한이 있는 품목도 다수 있다. 다만, 감기약, 거담제, 해열제는 코로나 이후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편이다.
기존에도 일본은 의약품 생산 가능량의 최대한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제조 비리, 인플루엔자 유행 등이 연달아 일어나며 공급이 크게 부족해졌다. 제약사 한 곳의 생산이 중단되면, 동종품 생산업체로 수요가 몰리게 되지만, (제네릭 의약품 회사) 한 기업이 몇백 품목의 약을 만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급이 부족한 약을 쉽게 증산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공급 부족 초기에는 소비자의 사재기도 많이 발생했는데, 이를 막고자 작년부터 일본제약연합회 홈페이지에서 의약품 공급 부족 품목 및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Q. 부족한 의약품에 대해서는 수입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상황인가?
그렇게 하고 싶지만, 세계적으로 수급이 부족한 감기약 등 품목은 일본만 특별히 수입량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일본 의약품 인가 신청은 신청에 1년, 연구 단계까지 포함하면 3~4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제네릭 의약품은 인가까지 3년 정도가 소요되므로 긴급히 부족한 품목을 쉽게 가져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긴급한 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인가 신청 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가능하다.
Q. 앞으로 의약품 공급 부족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최소 2년 정도는 계속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2019년부터 제조 비리를 발단으로 공급 부족 상황이 시작됐는데, 현재는 일본 내 인력 부족 문제도 엮여 있어 쉽게 증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또한 일본 정부의 약가제도는 제네릭 의약품 단가를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제네릭 의약품 제조사들이 많은 이익을 내고 있지도 않아 증산에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
Q. 일본 의약품 시장에 외국기업이 진출 시 가장 유의할 부분은 어떤 점인가?
의약품 인증 절차가 까다롭다는 부분에 유의가 필요하다. 특히 일본어로 주요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색깔 등 세세한 부분도 검토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 제약사의 경우, 일본어가 가능한 인력이 있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하기가 쉽고, 일본과 거리상으로 가까워 서로의 규제, 인증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Q. 의약품 분야에 있어, 한·일 양국이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
말씀드린 대로, 한국과의 의약품 교역은 거리가 가까운 점, 서로 의사소통에 있어 문제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한국 협단체 등과 서로 규제, 인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계속 얘기하길 희망한다.
또한 최근 3년간 한·중·일 장관의 의약품 관련 협의가 진행 중이나, 세부적인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민간 교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인 갈등은 없기를 기대한다. 최근 중국과는 비자 문제가 있어 교류가 예전보다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 기업의 일본 의약품 시장 진출 관련해서는, 바이오시밀러 등 일본보다 한국이 더 앞서 있는 품목에 힘쓰면 시장기회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이오시밀러는 현재도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많이 수입하고 있는데, 한국이 오래전부터 항생물질을 제조해 와서 바이오 면에서 강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바이오 의약품 확대를 위해 약가 설정 등에 신경 쓰고 있는데,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시사점
의약품 부족은 비단 일본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팬데믹으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 무역 제한, 제네릭 저가정책, 품질 이슈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세계적으로 의약품 부족이 심화됐다.
미국 보건시스템약사협회(ASHP, American Society of Health-System Pharmacists)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미국 의약품 부족 수는 323개로 2018년 이래 200개 이상의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이 만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항응고제, 간질 치료제,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등 필수 의약품을 포함한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유럽 제약 협단체인 PGEU(Pharmaceutical Group of the European Union)가 2023년 말과 2024년 초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자국에서 의약품 부족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유럽 국가 중 42%는 약 500개 이상의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 국가 중 대다수(65%)가 이전 12개월에 비해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23%)와 긍정적인 개선이 있었다(12%)고 답한 국가는 소수에 그쳤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6월 '2023년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제네릭 지원을 위한 의약품 상환가격 조정 등 약가 시스템 평가, 품질관리 위반을 줄이기 위한 규제 강화, 필요시 원재료의 공동 조달 및 투명성 개선을 통한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 등 대응 방안 제시했다.
특히 제네릭 의약품의 원료 수입의 중국, 인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공급망 다각화 움직임은 한국 기업에도 시장기회가 될 수 있다. 2022년 3월 기준 제네릭의약품 원료의 국가별 수입액은 중국(63.0%), 인도(20.9%), 한국(8.9%), 이탈리아(3.1%), 캐나다(1.1%) 순이다.
또한 주요국 대비 아직 일본의 바이오 의약품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만큼, 한국의 對일본 주력 수출 품목인 바이오 의약품 수출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바이오의약품에 해당되는 HS코드 300214(면역 물품(혼합된 것에 한정하며, 일정한 투여량으로 한 것, 소매용 모양이나 포장을 한 것은 제외)기준, 한국의 2023년 對일본 수출액은 410억700만 엔으로 일본 수입액의 30.7%를 차지하며, 미국에 이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4.1% 증가했으며, 향후에도 긍정적인 수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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