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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본문
-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질문을 껴안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여태껏 살아온 내 삶의 결과임을 인정한다.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J.S.mill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 지금부터라도 내 삶에 대해 더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싶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의미와 기쁨을 느끼고 싶다.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무엇인가 바꿔야 한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다.
- 열등감은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단연 고약한 것이다.
- 세상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너무나 많다. 곳곳에 '넘을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서 있다. 모든 나무와 모든 벽을 오르고 넘어서야 행복한 삶,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적합한 나무, 노력하면 넘을 수 있고 넘는 게 즐거운 벽을 잘 골라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을 후회 없이 즐길 수 있다.
- 살아 있는 모든 순간, 우리는 조금씩 죽어 간다. 죽음은 단지 삶의 이면(裏面)일 뿐이다.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함께 완성된다. 쉰다섯 해를 산 나는 이미 쉰 다섯 해 죽은 것이다.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삶은 허무하다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 역(逆)이 옳다.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
-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왜 자살하지 않는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을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 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 소통과 인간관계의 비결은 자기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바꾸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것이 재미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다.
-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산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가? 당신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고 있는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 이름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풀 한 포기 키우지 못하는 황무지나 마찬가지다.
- 갑작스럽게 찾아든 영원한 이별에 대한 상상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색깔과 맛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사랑은 싹난 감자처럼 아린 맛으로 다가온다.
- 부모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잘못은 자녀의 삶을 대신 설계하고 자녀의 행복을 대신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이름과 업적이 남았기에 그들의 삶은 훌륭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 역이 진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충실했을 뿐이다. 진리에 대한 호기심, 깨닫는 즐거움, 내면에서 솟구치는 열정,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자기 나름대로 표현하고 실천했다. 그렇게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재능과 행운의 도움을 얻은 극소수만이 위대한 그 무엇을 이루었으며 그와 함께 자기의 이름을 남겼다. 만약 자신이 삶을 긍정하고 자신이 이룬 것에 만족한다면 그 인생은 이름이 남든 그렇지 않든, 그에 상관없이 훌륭한 인생이다. 하지만 이름 남기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행위는 자칫 악명을 남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