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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사랑하는 픽업트럭, ‘전동화’ 시대엔 ESS가 된다? 본문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1,2위 모두 픽업트럭!
미국 전력망을 보완하는 ESS? 전기 픽업트럭의 또 다른 가치가 되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전동화’로 향하고 있을까, 아니면 예상과 달리 내연기관이 다시 무게 중심을 되찾고 있는 걸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완성차 기업들은 앞다투어 ‘전동화’ 전략을 내세우며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됐으며, 소비자들의 관심도 한층 낮아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5년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자동차 산업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기차 보조금 축소, 내연 기관차 규제 완화, 연방 차원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계획 철회 등을 포함한 행정 명령에 서명하며 자동차 산업의 정책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한편,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중형 픽업트럭 생산을 위해 12억 달러를 투자해 일리노이주 벨비디어(Belvidere) 조립 공장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해당 모델이 전기차인지 내연기관 차량인지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 스텔란티스의 행보는 단순한 공장 재가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전동화의 속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중심, 픽업트럭
미국에서 픽업트럭은 단순한 차량이 아니다. 넓은 국토와 다양한 지형, 실용성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오랜 기간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로 자리 잡았다. 개인의 이동 수단을 넘어 견인과 화물 적재, 오프로드 주행까지 가능한 다목적 차량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서부와 남부 지역 소비자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아왔다.
이러한 특성은 소비자들의 차량 선택 기준에도 반영된다. 미국 '빅3(포드, GM, 스텔란티스)'에 근무하는 엔지니어 K 씨는 "미국 소비자들은 차량 선택 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특히 높은 차체가 충돌 시 안전에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에 픽업트럭과 대형 SUV를 선호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비자 선호도는 판매량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동차 정보 제공 매체 AutoGuide에 따르면,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 상위 10개 모델 중 포드 F-시리즈, 쉐보레 실버라도, 램 픽업, GMC 시에라를 포함한 4개 모델이 픽업트럭이었다. 특히, 포드 F-시리즈는 42년 연속 미국 내 최다 판매 차량이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미국 자동차 판매량 TOP 10>
(단위: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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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은 미국 ‘빅3’의 가장 수익성이 높은 주력 차종이다. 포드 F-150 한 모델만으로도 연간 4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2024년 4분기 포드의 미국 소매 판매는 지난해 대비 17% 증가했다. 특히 F-시리즈는 25% 성장하며 포드의 실적을 견인했다. GM 역시 같은 기간 미국 소매 판매가 지난해 대비 21% 증가했으며, 픽업트럭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였다.
‘전동화’ 흐름 속, 픽업트럭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픽업트럭은 높은 연료 소비와 탄소 배출로 인해 전동화가 시급한 차종으로 지목돼 왔다. 장거리 주행과 높은 적재 성능을 위해 대형 내연기관 엔진을 탑재하면서 연비 효율이 낮고, 환경 규제의 주요 대상이 됐다. 실제로 2017년과 2023년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연비 및 탄소 배출 변화를 비교한 Porsche Consulting의 자료에 따르면, 중형 픽업트럭의 주요 제조사인 미국 ‘빅3’는 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제조사에 속하며, 연비 개선 속도도 경쟁사 대비 낮은 수준을 보였다.
<2017년 대비 2023년,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연비 및 CO2 배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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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바이든 행정부는 연비 기준을 상향하며 전동화 정책을 확대했고, 미국 완성차 업체들도 이에 맞춰 전략을 조정했다. 포드는 2022년 F-150 라이트닝을 출시하며 업계 최초로 전기 픽업트럭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 출시 초기 20만 건 이상의 사전 주문이 몰리며 기대를 모았고, 포드는 생산량을 15만 대까지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24년 들어 판매 둔화가 나타나면서 포드는 생산량을 조정하고,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대의 전기 픽업트럭 개발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GM 역시 실버라도 EV와 GMC 허머 EV를 출시하며 전기 픽업트럭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생산 지연과 기대 이하의 판매량으로 인해 초기 목표 달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당초 2024년 하반기 램 1500 REV를 공식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라 출시 시기를 2026년으로 연기하고 대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먼저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미국 ‘빅3’ 전기 픽업트럭 관련 동향>
제조사 | 브랜드 및 모델명 | 특징 및 출시 일정 |
Ford | F-150 Lightning | - 2022년 출시된 포드 첫 전기 픽업트럭 - 전기차 수요 감소로 생산 일시 중단, 2025년 1월 6일 이후 생산 재개 예정 - 시장 수요에 따른 추가 조정 가능 |
차세대 전기 픽업 (프로젝트 T3) |
- 당초 2025년 출시 예정, 비용 절감 및 배터리 기술 개선을 위해 2027년 하반기로 연기 - 저가 배터리 도입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목표 |
|
GM | Chevrolet Silverado EV | - 2023년 5월 생산 시작, GM 얼티엄(Ultium) 플랫폼 기반 제작, 미드게이트(Midgate) 확장형 적재 공간 및 프렁크(Frunk) 제공 - EV 픽업 시장 경쟁력 유지, 향후 생산 확대 가능 |
GMC Sierra EV | - 2024년 8월 고객 인도 시작, 1회 충전 시 최대 440마일(708km) 주행 가능 - 프리미엄 전기 픽업 시장 공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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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ntis | Ram 1500 REV | - 2026년 출시 예정, 긴 주행거리 및 고성능 제공 목표 - 전기 픽업 시장 경쟁력 강화 모델 |
Ram 1500 Ramcharger | - 2023년 11월 발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방식 충전 인프라 부족 대응 모델로 내연기관 엔진 발전기 활용, 주행거리 연장 가능 |
전기 픽업트럭이 기대만큼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가장 큰 요인은 실제 운행에서의 주행거리 제한과 효율성 문제다. 특히, 화물을 적재하거나 견인할 경우 배터리 소모가 급격히 증가하는 점이 주요한 걸림돌로 지적된다. 미국 자동차 협회(AAA)의 연구에 따르면, 포드 F-150 라이트닝의 주행거리는 최대 적재량(1400파운드)에 근접한 상태에서 약 24.5% 감소했다. 기본 주행거리 278마일에서 210마일까지 줄어든 것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무게 증가에 따른 에너지 소비 영향이 더 크며, 픽업트럭은 견인 및 적재 수요가 높아 실제 운행 환경에서는 공차 상태보다 주행거리가 더 단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충전 인프라 부족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픽업트럭 사용자는 장거리 운행이 많지만, 교외 및 고속도로 충전소 확충이 더딘 상황이며, 겨울철 배터리 성능 저하까지 고려하면 실사용자들의 우려가 크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비자들은 완전 전기 모델보다 하이브리드나 고효율 내연기관 모델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포드는 2024년 F-150 하이브리드 모델의 생산량을 두 배로 확대했으며,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47.4% 증가했다. GM과 스텔란티스 역시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픽업트럭 출시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2022~2024년 미국 빅3 픽업트럭 판매 동향>
(단위: 대수, %)
제조사 | 브랜드 | 모델명 | 파워 트레인 |
2022년 | 2023년 | 2024년 | 증감률 ('24/'23) |
Ford | Ford | F-Series | EV | 15,617 | 24,165 | 33,510 | 38.7 |
HV | 35,544 | 50,103 | 73,845 | 47.4 | |||
ICE | 602,796 | 676,521 | 628,451 | -7.1 | |||
Maverick | HV | 31,369 | 52,361 | 68,752 | 31.3 | ||
ICE | 43,001 | 41,697 | 62,394 | 49.6 | |||
Ranger | ICE | 57,005 | 32,334 | 46,201 | 42.9 | ||
GM | Chevrolet | Colorado | ICE | 89,197 | 71,081 | 98,018 | 37.9 |
Silverado | EV | - | 461 | 7,428 | 1511.3 | ||
ICE | 513,354 | 543,319 | 542,527 | -0.1 | |||
GMC | Canyon | ICE | 27,819 | 22,458 | 38,220 | 70.2 | |
Sierra | EV | - | - | 1,788 | - | ||
ICE | 241,522 | 295,737 | 322,932 | 9.2 | |||
Hummer Pickup | EV | 854 | 1,746 | 4,917 | 181.6 | ||
Stellantis | Jeep | Gladiator | ICE | 77,855 | 55,188 | 42,123 | -23.7 |
Ram | Ram P/U | ICE | 468,344 | 444,926 | 373,120 | -16.1 |
그러나 전동화 흐름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전기 픽업트럭은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전동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ESS(에너지 저장 장치)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전동화가 단순한 ‘내연기관 대체’에서 ‘에너지 저장과 공급’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전기 픽업트럭의 새로운 역할이 논의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 픽업트럭을 활용한 V2L(Vehicle-to-Load) 및 V2G(Vehicle-to-Grid) 기술을 도입하며, 전력 저장 및 공급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픽업트럭, 도로 위의 ESS(에너지 저장 장치)가 되다!
전기차가 ‘움직이는 ESS’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기 픽업트럭은 일반 전기차보다 더 큰 배터리를 탑재하며, 에너지 저장 및 공급 기능이 더욱 확장되고 있다. 특히, 노후화된 전력망과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으로 인해 전력 수급 안정성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미국 시장에서 전기 픽업트럭의 ESS(에너지 저장 장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포드 F-150 라이트닝, 리비안 R1T, 테슬라 사이버트럭 등은 V2L(Vehicle-to-Load) 기능을 지원해 차량 배터리를 외부 전력 공급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포드 F-150 라이트닝은 ‘Intelligent Backup Power’ 시스템을 통해 정전 시 가정 전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최대 3일간 필수 전력을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10일까지 활용할 수 있다. 리비안 R1T는 ‘PowerCamp’ 기능을 활용해 캠핑 장비 및 야외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도록 설계됐으며, 테슬라 사이버트럭 또한 ‘Powershare’ 기능을 통해 차량을 이동식 발전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와 함께, V2G(Vehicle-to-Grid) 기술을 통해 전기 픽업트럭이 전력망과 연결되면, 에너지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공급하는 분산형 전력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는 전력망에 전력을 공급하고, 전기 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는 충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 구축 논의가 진행 중이며, 전기 픽업트럭이 분산형 전력망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전기 픽업트럭의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연계 기능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Southern Company는 포드와 협력해 F-150 라이트닝 200대를 전력망과 연계하는 6개월간의 파일럿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번 실험은 EV 충전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전력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요금 체계 및 수요 반응(Demand Response)을 활용해 최적의 전력 운영 방안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전기 픽업트럭의 에너지 저장 및 공급 기능을 실증하고, 전력망과의 연계를 통한 활용 가능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점
한여름 폭염 속 냉방이 멈추고, 한겨울 한파 속 난방이 끊긴다면? 미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낯설지 않다. 2025년 1월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2018~2020년 동안 조사된 1600개 카운티 중 75%가 악천후로 인한 대규모 정전을 경험했다. 특히 미시간주에서는 2023년 기준 DTE Energy 고객의 13%가 최소 네 차례 정전을 겪었으며, 45%는 8시간 이상 지속된 정전을 경험했다. 노후화된 전력망과 기후 변화로 인한 전력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에너지 저장 솔루션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기 픽업트럭은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분산형 ESS(에너지 저장 장치)로서의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전기차 대비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 픽업트럭은 정전 시 가정과 사업장의 전력 공급원이 될 수 있으며, 필요할 때 전력망에 전력을 되돌려 보낼 수도 있다. 특히, V2G(Vehicle-to-Grid) 및 VPP(Virtual Power Plant) 기술이 결합되면, 전기 픽업트럭은 분산형 전력망을 보완하는 핵심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기업들은 전력망과 연계한 활용 모델을 검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제 운영 환경에서 전력 수요 대응과 에너지 저장 기능의 효과를 평가하고 있다.
<양방향 전기차 충전 개념(V2G, V2H, V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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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기 픽업트럭이 ESS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충전 인프라 부족은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전력망과의 연결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대용량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면 ESS로서의 역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또한, 경제성 역시 중요한 변수다. 전기 픽업트럭의 높은 가격과 보조금 축소 가능성은 소비자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책적 불확실성도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및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 등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관련 인센티브가 줄어든다면, 기업들의 전기 픽업트럭 전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대는 올 것이다. 기업들은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며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빅3'의 한 엔지니어는 "중형 픽업트럭이 미국 완성차 업체들에 가장 수익성이 높은 핵심 상품이라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기업 재무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본격적인 전동화 시대를 앞두고 픽업트럭의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기술적 한계와 시장 수요를 동시에 고려한 전동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회는 이미 열리고 있다. 많은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지금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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