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OLKONG
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다 본문
- 신중하다는 것은 자신이 하는 행동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생각한다는 말이다. 신중한 사람은 늘 자신의 행동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이다.
- 모든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모든 순간의 참가치를 느끼며 삶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풍성한 경험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사람은 잔디밭에 눕기만 해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파라다이스를 경험할 수 있다. 틱낫한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충분히 신중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경배는 나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바꾸고 새롭게 규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경배는 모든 것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를 말하기도 한다. 바라보는 대상을 평가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경배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허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 '바르게 사는 사람'은 이야기를 할 때의 '바르게'는 다른 측면의 의미도 갖는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이다. 바른 사람은 숨길 것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상대보다 높은 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까지 바로 설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바른 사람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굽실거리지 않는다.
- 진정성 있는 나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기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기분과 나를 분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나를 찾고 지킬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다.
- 진정성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 자신을 잘 포장 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그냥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설정한 역할을 수행하거나 어떤 배역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
- 우리는 먼저 나 자신에 대해 자비로울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대할 때, 나의 상처와 아픔을 대할 때, 나의 연약한 자아를 대할 때 자비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나의 상처와 마주할 때 나의 상처를 객관적인 눈으로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시선으로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의 실수와 약점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 그럴 때 나의 약한 모습도 변화될 수 있다.
- 친절한 태도는 결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무엇이든 다 수용하고 허용하는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친절한 태도는 나의 자존심과 자아를 지키면서 보이는 다정함이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게 도발하도록 허용하는 태도가 아니다.
- 평온한 태도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신이 부여해주신 나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지 나를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나에게는 이미 좋은 모습이 있다. 이 좋은 모습을 가리고 왜곡하는 껍데기를 벗기기만 하면 된다.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발전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계속해서 발전할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고립되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으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넘어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면 어느 순간 모든 것, 신의 모든 창조물, 특히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 그리고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외로움이 변하여 연대감이 된다.
-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끊어버리는, 능동적으로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행위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지배당하며 그의 통제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