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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LKONG

우리의 삶으로 대답할 차례 본문

일상

우리의 삶으로 대답할 차례

DDOL KONG 2021. 12. 25. 05:26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는 종양내과 의사이지만 마지막을 예감하고 뒷정리를 하고 나오는 환자를 별로 보지 못했다. #임종 을 앞둔 말기 암 #환자 조차도 집을 나서면서 이 외출이 집을 나서는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에 머무는 것은 ‘잠시’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그 상태로 ‘갑자기’ 임종을 맞는다. 아마도 대부분 그 집에도 내 아버지의 남은 물건들처럼 고인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을 것이고, 그것이 그 고인의 마지막 흔적이 될 것이다.

내가 목격한 마지막 뒷모습은 때로는 #정리 되지 않은 돈이었고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뒤얽혀 고인에 대한 슬픔을 넘어 분노로, 지리멸렬함으로 끝나고는 했다. 고인이 정리하지 못한 관계들이 남아 있는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지켜보면 무엇이든 간에 정리되지 않고 남은 것들은 대개 아름답게 기억되지 못할 것들이었고, 남은 사람들이 #해결 해야 할 그 무엇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인의 뒷모습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종종 그조차도 책상 정리를 하듯이, 집을 치우듯이 평소에 정리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흔적들을, 나의 관계들을, 나의 많은 것들을 오늘 집을 나서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여기고 지금의 내 흔적이 내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덜 어지르게 되고, 더 치우게 된다. 좋은 관계는 잘 가꾸게 되고 그렇지 못한 관계는 조금 더 정리하기가 쉬워진다. 홀가분하게, 덜 혼란스럽게 자주 돌아보고 자주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부터도 잘하지 못한다. 삶에 대한 #의지#집착 은 한끝 차이이고,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일단 마음부터 편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떠나고 난 뒤 타인의 기억에 남을 내 마지막이 어떻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해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내가 떠난 뒤에만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 이 삶에서 드러난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살아온 #인생 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행로를 걸어왔든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모두가 같다. 다만 그 종착역에 닿는 모습은 또 각기 다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종착역 에 당도한다.


20년 가까운 시간, 많은 환자들이 삶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쭉 지켜봐왔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 그들이 드러내는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때때로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내 삶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삶의 얼굴이 다른 이들로 인해 드러나게 될 때 거울을 보는 기분으로 내 삶과 죽음을 마주한다. 내 환자들의 삶과 나의 삶은, 아니 우리의 삶은 다른 듯 닮았다. 아마도 죽음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어쩌면 죽음만큼이나 삶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어떤죽음이삶에게말했다 / #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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