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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그럼에도 시간을 써야한다 본문

일상

[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그럼에도 시간을 써야한다

DDOL KONG 2024. 4. 1. 20:10

소중한 사람을 얻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스마트폰 잠시 손에서 놓고
시간내 만나고 얘기 나누길


요즘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간 부족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들 하나같이 '시간 없음'을 호소하고 있다. 연애할 시간도, 친구를 만날 시간도, 취미를 키울 시간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거의 매일 듣는다. 나름대로 노동 시간 등은 점점 합리적으로 변해간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모르면 몰라도, 우리에게 할 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집에 돌아오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스마트폰 하나만 켜더라도 온갖 SNS에 유튜브·OTT를 보거나 각종 게임, 쇼핑 등을 하다 보면 시간이 '순삭(순식간에 삭제)'된다.

어쩌면 그런 와중에 우리에게 가장 없어지는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쓸 시간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우리 인간은 시간을 써야 한다. 이는 익히 수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공감을 얻은 '어린 왕자와 여우'의 이야기에서부터, 털 손질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친밀감을 높이는 영장류의 본능, 최근의 우정에 관한 심리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거의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시간을 쓰지 않으면 누구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쓰려면 너무 많은 의지가 필요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 누군가를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고 싶은 넷플릭스 시리즈와 매일 업데이트되는 유튜브와 거의 생화학적 도파민 시스템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쇼츠와 릴스를 넘어서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앱으로 100명의 소개팅 상대를 골라내어 만나보더라도 그들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긴 어렵다. 누가 됐든 그와 적어도 몇십 시간쯤은 함께 보내야 그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여지라도 생긴다. 우정에 관한 과학책 로빈 던바의 '프렌즈'에 소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그냥 아는 사람에서 '가벼운 친구'라도 되려면 45시간 정도는 함께 보내야 한다고 한다. 유의미한 친구가 되려면 100시간쯤은 함께 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겨울 수분이 메말라가는 나뭇가지처럼 잃고 있는 건, 바로 그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충분한 시간을 써서 그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잃고 있을지 모른다. 마치 온 사회와 문화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타인에게 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라, 코인 투자를 하라, 평생 다 봐도 볼 수 없는 온갖 영상들에 빠져라, 그렇게 말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의식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느끼곤 한다. 자연스럽게 그냥 살면, 나는 타인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가능성에 스스로 닫혀버릴 수 있다고 느낀다. 그냥 돈 벌고, 소비하고, 누워서 먹는 당분과 누워서 보는 콘텐츠에 중독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인간의 세계'로부터 차단된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은 그러라고 태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유대 관계를 맺고, 지지하고, 의존하며, 서로에게 절절해지라고 태어난 쪽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기'라는 결단이 필요하다. 애써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폭풍을 뚫고 골짜기를 넘듯이, 그를 찾아 떠나야 한다. 그를 만나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어깨를 두들기고, 만나서 반갑다며 웃고 이야기에 빠져들어야 한다. 늦기 전에 연락하고, 찾아가자.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나이가 들고 나면 남는 건 사랑과 우정뿐일 수도 있다. 다른 것들이 오히려 허상에 가까웠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280542?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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