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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본문
* 난독증(dyslexia)은 지능이 정상이거나 뛰어난 아이가 글을 아예 읽지 못하거나 글 읽기를 대단히 어려워하는 경우를 지칭 할 때 사용한다. 난독증의 사전적 의미는 '읽기를 배우는데 따르는 큰 어려움'이라 지칭한다.
* 학습장애(learning disabilities)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추론수학 등의 능력을 습득하고 사용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장애를 한데 묶어 일컫는 단어다.
* 학습곤란(learning difficulties)이란 전문용어라기보다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말에 가깝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는 읽기나 산수, 쓰기, 기억과 기타 분야에 나타나는 특이한 장애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 먼저 '시각적 사고'란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거나 떠올려 그것을 조작하고, 덮어씌우고, 해석하고(비유등의 방법으로) 유사한 형태와 연관 짓기도 하고, 회전시키고,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기도 하고, 왜곡시키고, 하나의 익숙한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단계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실제의 사물을 시각적으로 표상한 것일 수도 있고, 비실제적인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 형상을 다룰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이런 시각적 형태가 반드시 시각에서 유래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앞을 못보는 사람도 동작과 접촉, 소리를 통해 방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 사실 어떤 과학자나 수학자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자유와 심도 깊은 창의적 개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 결국 빨리 자란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잘하지만, 더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한 사람에 비해서는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늦춰진 성숙 과정을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더 유연하고 흡수력이 좋은 아이의 세계를 더 오랜 기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경직되고, 언어화되고, 학습된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쌓아둔 생생한 경험을 이용해 직관을 발달시킬 수 있다. 둘째, 이후에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장애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놀라운 신경학적 능력이 생길 가능성이 실제로 높아진다. 그리고 셋째, 늦게 성숙한 사람은 경이감이나 신선한 사고방식, 선입견으로부터의 자유 등 어린 시절에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 중 일부를 평생유지할 수 있어 탁월한 창조성을 지닐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러므로 성숙의 시계추는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지만, 적절한 조건 아래서는 느린 성숙이 상당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겠다.
- 심리학자이고 소설가이고 난독증을 가졌던 엘린 심프슨은 자서전<반전>에서 어린 시절에 '깃털'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파리'같은 말이 튀어나와 화가 났던 경험을 소개했다. 말실수는 난독증임을 나타내는 다양한 증상 중 하나로, 보통은 두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바람직하지 못한 변형이 생겼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연구에서는 단어를 바꿔치기하는 이런 경향을 일컬어'착독증paralexia'이라고 부른다. 착독증은 적절한 단어를 쓰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게 그와 연결된 다른 단어로 바꿔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 농부든, 상인이든, 기술자든간에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는 일을 돕다가, 흉내를 내다가 실수도하는 등 대부분 실천을 통해 뭔가 체득했고 글자나 문장보다는 손과 눈으로 배웠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나이를 많이 먹으면 직업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고, 일단 발을 들여놓은 다음에는 계속해서 교육을 받는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교육과 직업 문화에서 또 다른 큰 반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아들딸들을 다시 한 번 자신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는 활기찬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만큼이나 시각적.운동감각적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우는 경우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고 상황이 역전되어 이렇게 교육과 일이 평생 뒤섞이는 새로운 세상에서는 창조적인 시각적 사상가들과 상상력이 풍부한 실험가들이 읽기나 수천만 개 단어를 암기하고 정확히 기억하는 일에만 능통한 사람들보다 변화된 환경에 훨씬 더 잘 적응할 것이다.
-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황당한 패턴 중 하나는 때때로 쉬운 것을 어렵게 느끼고, 어려운 것을 쉽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불완전하나마 어떻게든 학업에서 살아남을 능력을 가진 똑똑하고 창조적인 난독증 보유자들에게는 이런 역설적인 반전이야말로 그들의 곤경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쉽고'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내용들을 통과하고 나면 그 후로 이들은 '어렵고' '복잡하고' '고난도' 라고 생각되는 과목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고학년이 되거나 대학에 들어가 약점인 과목은 피하고, 장점인 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으면 이런 성향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심프슨의 경험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 교육에서 얻은 지식보다 추상적 개념을 다루는 능력이 더 중요한 논리, 철학, 경제 이론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내 점수는 급상승했고, 수업 시간이 즐거워졌다. 점수가 잘 나왔기 때문에 심지어 내가 뛰어난 학생들과 똑같은 학습 방법을 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 과목들은 썩 잘했지만, 학습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적절한 공부 방법을 훈련하는 데 여전히 곤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문제점(나쁜 기억력과 학습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 즉 그녀가 논리나 철학, 경제 이론 같은 '어려운' 과목들을 아주 '쉽다고' 느꼈다는 점이다.
- 학교나 직장에서 수학적 능력을 평가할 때나 표준 적성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할 때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내놓는가 하는 산술적 계산 능력은 수학적 재능을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간주된다. 이 모든 평가에서 주된 관심사는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주어진 시간 안에 정답을 얼마나 많이 맞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과 검사 방법으로는 겉으로 드러난 장애 아래 깊숙이 숨어 있는 수학적 능력을 알아낼 수 없다. 다행히도 최근 수학 교육 개혁 운동을 통해 이런 접근 방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1921년 미국을 처음 방문 했을때 아인슈타인은 학생이 대학 공부를 마치고 난 뒤에 평생 갖춰야 할 지적 소양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묻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백과사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실적 지식들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워놓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사람의 기억력이 좋느냐 나쁘냐를 따질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것을 잘 기억하느냐, 즉 패턴을 잘 기억하느냐 아니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세부적인 내용을 잘 기억하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인슈타인은 사람들이 아는 것은 그렇게 많으면서 정작 제대로 이해하는 건 어쩌면 그리도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너무 많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하곤 했다.
- 어떤 시대든 그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다가올 큰 변화에 대한 전망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19세기 초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95퍼센트가 농사와 직접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당시 농부들 가운데 한 세기 후면 미국 전체 인구의 겨우 2-3퍼센트가 전체 국민을 먹이고도 남아서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먹일 만큼의 식량을 제공할 거라고 믿은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능력 있는 대학생들의 경영이나 법률 및 기타 전문직 자리를 차지하려고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치열한 경쟁을 계속했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 컴퓨터가 아무리 빨라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똑똑해지고, 싸고, 작아진다고 해도 그깟 컴퓨터에 그들이 힘들게 고생해서 배운 기술의 시장 가치가 위협받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 만약 실제로 이 두가지 사고방식이 본질적으로 양립 불가능한것 이라면, 한 가지 정보 저장과 처리 방식 능력이 대단히 발달한 사람은 그와 상호보완적인 방식에 대해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다. 누군가가 말을 조리있게 잘한다면, 그림 그리기에서는 희망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풍경 전체를 시각화하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그 풍경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서투르거나,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뿌리 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페러데이의 말처럼 "모든 사람이 확신에 차 있을 때도 가장 현명한 사람만큼은 예외다. ......자신의 이론마저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 그사람이야 말로 가장 현명한 철학자다.
- 현재 수학 교육에 대한 이런 접근 방법 중 일부에서는 진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몇몇 교육 개혁 운동에서는 고차원적인 사고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교육 프로그램에 계산기나 컴퓨터를 포함 시키도록 학교들을 설득하고 있다. 최근에 제안한 내용 중 두 가지가 특히 흥미를 끈다.
수학을 평가할 때는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평가 방법만을 사용해야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평가 시험을 잘 치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고, 교과서 역시 이 같은 평가 목적에 맞춰 나올 것이다. 오늘날의 평가 방법은 기계적 계산이나 모방 수학으로 가득 찬 교과 과정을 강요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학교 수학에 컴퓨터와 계산기가 사용되어야 한다. 이제 계산은 컴퓨터가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학생들은 모든 학년에서 언제 머리를 써야 하고, 언제 컴퓨터를 이요해야 할 것인지 배울 필요가 있다.
- 창조성에 몇 가지 주요 단계가 있다는 것과 '심오하다'는 게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가장 창조적인 업적 중 일부는 겉보기에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다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 누구한테 '좌뇌형이다' '우뇌형이다'라고 말하는 건 오해를 유발하는 개념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대칭적' 두뇌와'비대칭적' 두뇌라는 개념은 우리가 목격하는 사고 능력의 다양성을 더욱 잘 이해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정치적.경제적 과정에 비유해보면 이해하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규율이 엄격한 군대처럼 융통성 없이 중앙집중화되고 위계질서가 잡힌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비대칭적인 시스템을 무언가 결정을 내리고 명령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거의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신경계는 좀 더 대칭적일수록 대의민주주의 혹은 지방분권적인 경영 시스템과 닮아 보인다. 이것은 일처리 속도와 반응 속도가 느리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화된 요소들을 폭넓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 특화된 요소들은 제한적이나마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능력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 어떤 종류의 특별한 창조적 능력은 그리 드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것을 발견해 발전시키는 경우가 드물 뿐이다. 단순히 지식이 많은 학자나 재주 좋은 기술자가 아니라 진정 위대한 발명가나 수학자, 과학자가 될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차를 수리하고, 예술학교에 다니고, 트럭을 운전하고,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항공 기술 강의를 하고,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디자인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묻혀 있거나, 관료주의적인 기업체나 정부기관에서 중간관리자 속에 파묻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믿기 어려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능은 매한가지로 일률적이며, 등급에서만 차이가 난다는 믿음이 마음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뛰어난 것은 결국 저절로 두각을 나타내게 마련이라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연의 본성을 가장 잘 꿰뚫어보는 사람이 전통적인 교육제도에서 요구하는 일이나 성공적인 이력을 쌓는 일에 그다지 뛰어나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강의를 선택해 들을 때, 중간 중간에 무직 상태였을 때, 그리고 이름 없는 하급관료(3등급 특허청 사무원)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초기 연구의 상당 부분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가 내놓은 초기 연구가 혁명적인 것임을 알아차린 극소수 가운데 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을 찾아냈을 때 그는 아인슈타인이 대학 교수나 큰 과정의 고위 관료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특허청에서 찾아냈을 때, 아인슈타인은 그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볼품없는 사무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