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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LKONG

어른 공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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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DDOL KONG 2022. 9. 16. 00:42

 

- 죽음 앞에서 떨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래서 카뮈는 죽음을 놓고는 그 어떤 사건도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했지. 

그러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죽었다고 생각하고 한번 살아봐. 그러면 용서 못 할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고, 속상해할 일도 없어. 하루가 덤으로 오는 보너스 같아. 그래서 매일 고맙지. 물건 살 때 하나 더 주면 기분 좋아지는 것처럼.

나는 사형수들을 떠나보내면서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의연해졌어. 돌이켜보면 이별 연습은 사형수들이 나에게 가르쳐주고간 인생 공부야. 사형수들에게 일러준 대로 나도 가면 되는 거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두면 어떻게 살아야겠다가 환히 보여. 죽는 얘기하고 무작정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야.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로 가는 길이 불안하지 않아. 그냥 마포에서 일산으로 이사 가는 것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열심히 산 사람은 죽음에 의연할 뿐 아니라 이별도 잘해. 자꾸 뒤돌아보는 것은 거기에 다하지 못한 미련이 있어서야.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목숨을 걸고 살아온 사람은 이별도 쉽게 할 수 있지. 이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것이 다 불량품이야.

- 삶은 원래 힘들다, 엄살떨지 마라

사형수들과 긴 세월을 함께하다 보니 안개에 옷 젖듯 나 자신이 사형수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행동할 때가 있어. 강의를 하러 조금 먼 길을 나설 때는 물론이고 잠깐 외출을 할 때도 나는 항상 집 안을 깨끗이 정리해. 깔끔하게 정리해놓고도 현관에 서서 한 번 더 집 안을 둘러보곤 하지. 마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12월이 되면 내가 의식처럼 하는 일이 있어.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대신 나 때문에 마음 상한 사람이 있는지 헤아려보고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 평상시에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미루지 않고 바로 해결해버리지.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사는 거야.

- 불교 경전인 《보왕삼매경》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 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옛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나는 처음에 이 문구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그래, 내가 살면서 곤란이 없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렇게 고통스럽고 불행하구나. 인생이란 늘 해야 하는 숙제를 만나는 과정이구나.

- 불행은 가정에서 시작돼. 성숙하지 못한 부모, 책임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정에서 보호 받지 못한 생명들은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지.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거야.

너무나 불행한 그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 돌아설 수가 없었지. 그러다 보니 대단한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오랜 세월을 그들 곁에 있었던 거야.

- 인생에서 무엇을 얻고 나면 행복해질까? 빌딩 몇 채를 가지면, 화려한 직업을 가지면 행복해질까?

- 나는 그만 살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궁리를 많이 했어. 어느 누가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겠어? 

고등학교 때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 배운 거 생각나? 쾌락주의 철학 어쩌고 하면서 외운 이름 있잖아. 그 양반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실험을 했더라고. 그 양반 결론인즉, 들어가 누울 집이 있고 세 끼가 해결되면 돈이 더 많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더군.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뭐냐? 우리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야. 우정, 사랑, 나눔…….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는 게 문제야. 죽을 때나 돼야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후회하잖아.

- 행복은 결과가 아니야.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 묻어 있는 조그만 열기.

- 나이 들수록 할 일이 없어지니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어. 옆에 끼고 살아도 걱정이 되는 것이 자식인데 자주 못만나니 얼마나 궁금하겠어. 몇 십 년간 알뜰살뜰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그렇지.

그렇다고 평생 같이 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 되지.

자식이 성인이 되면 훨훨 떠나 보내줘야 돼. 나이 든 부모가 보채지 않고 혼자 고물고물 잘 살아주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일이야. 자식에게서 해방되지 않으면 죽음의 문턱도 넘기 어려워.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자식에게서 해방되는 공부를 해야 해.

오래전에 읽은 셰익스피어의 책 중에 '노인은 젊은이가 묻기 전에 말하지 마라'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내 가슴에 팍 와 닿았어. 그 후 한 번도 이 말을 소홀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어. 나는 책이나 누구에게 들은 말 중에 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갖고 가고 싶다는 구절을 만나면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

궁금한 것 못 참고 꼭 확인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남도 피곤하게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피곤해. 이런 사람은 혼자 놀 수가 없어.

- 배가 산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헤매고 방황해도 가만히 지켜보는 노인이고 싶어. 노인은 웃어도 밉다는데 나는 안 웃어도 예쁜 노인이고 싶어.

- 지금 혹시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나 싶어 괴롭다면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종이에 하나씩 하나씩 써봐. 써 놓고 나서 그것이 정말 그렇게 힘들어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거야.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남을 미워하는 것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때 미워해.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상처 입히고 있는 꼴이야.

인생길을 달리다 보면 누구나 터널을 만나게 돼 있어. 터널이 어둡다고 멈춰 선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어. 조금만 지나면 곧 터널 끝이 나오는데 말이야.

꼼수 부리며 피하고 싶어? 갓길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기를 바라.

- 스트레스는 불과 같아. 불은 꺼야 돼. 불을 끄는 방법은 각자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음과 주변 정리를 해. 집 안이 더러우면 청소하듯 마음 청소를 하는 거지.

1.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이름을 수첩에서 지운다

2. 버릴 것 찾아보기

3. 살림 위치 바꾸기

4. 복잡한 서랍 정리하기

5. 집 안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기

마지막으로 여행까지 하고 오면 마음이 바뀌거든. 용서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대로 갈 것이냐, 그냥 버릴 것이냐.

그때 내리는 결정이야말로 현명한 답이 되는 거야.

- 돈이 돈의 역할을 잘 해줄 때 진짜 돈이 좋은 것이지. 친구도 마찬가지.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가 진짜 친구야.

- 아이들은 부모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먹고 살아. 부모가 어떤 언어를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 만들어지지. 따뜻하고 격려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인격적으로 풍요롭고 포용력을 배우지만, 폭력적이고 신경질적인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게 돼.

- 김춘수 시인은 '그대가 나를 꽃이라 불러줄 때 나는 비로소 꽃이 될 수 있었다'고 했지. 언어는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이야. 전혀 모르는 사람도 5분만 말을 섞다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그대로 묻어 나와.

언어는 또 얼마나 힘이 센지 몰라. 잘못 쓰면 평생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폭력이 되지만 잘 쓰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지.

목숨 같은 내 자식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면 욕 한마디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어.

- 매일 힘든 여정을 보내고 아이는 지친 몸으로 엄마의 품으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엄마가 전해주는 사랑의 기름을 넣고 다음날 또다시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거야. 그래서 엄마의 가슴은 기름탱크야.

특히 아이는 학교로, 부모는 직장으로 나가는 아침 시간에 다정하게 헤어져야 돼.

잠깐이라도 안아주고,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주어야 돼.

이것이 서로에게 좋은 기름(사랑과 신뢰)을 넣어주는 방법이야. 이런 기름을 넣고 나간 아이는 그 기름 덕분에 밖에서도 평안하게 놀아.

형편상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도 기름은 얼마든지 넣어주고 공급받을 수 있어. 이렇게 기름 공급이 잘 이루어질 때 가족의 결속력이 강해지지. 항상 손잡고 한 집에 붙어 있다고 결속이 잘 되는 것은 아니야.

이제 가족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어. 엄마는 집에 있고 아버지는 돈 벌러 나가고, 그런 시대는 가버렸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보이지 않게 기름을 서로 공급하면서 자기 세계를 향해 가는 것이지.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잘해줄 때 결속력은 강해지는 거야.

- 선생님은 내 맘에 들어도 선생님, 마음에 안 들어도 선생님이야. 내 아이를 학교에 보냈으면 선생님이 좋든 싫든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돼. 선생님에 관한 흉을 실컷 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겠어? 내 아이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불신하면서 공부를 잘할 수 있겠어?

우리 아이의 선생님이 100%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끝까지 아이에게는 너희 선생님은 괜찮으신 분이다, 그렇게 말해주어야 돼.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말에 힘을 얻어. 엄마가 건강한 말과 행동을 보여줄 때 내 아이도 건강한 기운을 받는 거지.

- 자녀 교육은 엄마가 바로 서 있어야 제대로 돼. 엄마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면 아이도 휘청거려. 엄마들이 선생님에 대해 떠드는 무성한 말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부모가 현명한 거야.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어. 선생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엄마가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데 그 자녀가 건강한 경우는 본적이 없어.

선생님이 추락하면 세상은 선생님을 향해 힘껏 돌을 던지지. 부모가 추락하면 누가 돌을 던지겠어?

바로 내 자식이 돌이 되어 나를 때리는 거야.

-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에 '가장 큰 매는 침묵'이라고 했어. 때리고 싶을 때 안아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침묵해봐. 침묵은 각자의 생각을 담아두는 거야. 아이는 침묵 속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부모와 선생은 자신의 분노를 침묵 속에서 조절하고.

사랑의 매는 이 세상에 없어. 절대로.

- 인간은 유동적인 동물이야. 적응력이 좋은 동물이지. 어디서 누구하고 같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

- 주변에서 보면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지지리 고생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잖아. 그런 사람을 보면 저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왜 그리도 힘들게 사는지 궁금하지? 불교에서는 과거 생의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하지.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면 제아무리 배포가 큰 사람이라도 나쁜 짓을 못할 거야.

그런데 절에 다니면서 인과응보가 무섭다고 배워도 아무렇지 않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 뜨거운 맛을 몰라서 그럴까?

- 우리 인간의 계산법은 언제나 불확실해. 세상살이는 계산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아.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고?

지구에 사는 65억 명이 전부 다르듯이 365일 어느 하루도 같은 날은 없어.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지. 그러니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고통과 아픔도 영원하지 않고 행복과 즐거움도 영원하지 않아.

지금 힘들다고 절망하지 말자.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병든 육체가 아니라 절망이야.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 나이 들고 보면 인생이란 놈이 그렇게 혼란스럽지만은 않다는 거야. 다른 좋은 점도 있지만 나는 이게 제일 좋아. 지혜가 생긴다는 거, 그리고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거 말이야. 내 식대로 말하자면 인생의 공식을 터득하게 되는 거라. 이건 지식이 많아도 소용 없는 문제거든. 반드시 그만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거란 말이지.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이것도 공짜로 되지는 않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나이는 먹지만 지혜는 그냥 쌓이는 게 아니거든.

- 이제 '나이 먹는 것도 괜찮아.'라는 말의 진짜 뜻을 알겠지? 그냥 나이 먹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 '나이 먹는 것도 괜찮을 만큼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란 말이지.

- 진정한 감사는 가진 것이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거야. 그 믿음 속에 살아왔기에 나는 항상 감사할 것이 많아. 19년 된 고물차가 시동이 걸릴 때, 예금계좌에서 필요한 돈을 인출할 때, 좁은 수납공간에 내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볼때…. 이처럼 일상에서 작은 감사를 마주할 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

감사함을 배운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세상에 기뻐할 일이 너무나 많은 거라.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행복의 원동력은 돈이나 건강이 아니라 바로 감사의 힘이야.

- 언제 운명의 날이 올지 아무도 몰라. 사형수는 교도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 밖에서 사는 우리도 사형수마냥 언제 집행날이 올 줄 모른 채 집행날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는 거야. 오늘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지. 교통사고나 예상 못한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죽잖아.

다들 영원히 살 것처럼 무사태평이야. 사형수들은 안 그래. 그들은 매순간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죽음을 의식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이게 감옥 안의 사형수와 감옥 밖의 사형수가 다른 점이야.

나는 감옥 밖 사람인데, 오랜 세월을 사형수들하고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내 머릿속에 이런 말이 박혀 있어.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러니 내 사전에 내일은 없다. 바로 지금이 언제나 전부다.'

이게 참 요상한데, 오늘을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 후회할 일이 많으면 죽는 순간 얼마나 죽음을 탓하고 원망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따라오는 거야.

- 죽음.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길이야. 운명처럼 죽음이 나를 찾아 왔을 때 무심히 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 하루에 20구씩 5년 동안 2만 여 구의 시체를 돌봐온 상담자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어. 시신에 옷 입혀 보내는 일을 하면서 체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어. 숨을 거둔 시신의 모습은 다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야. 죽어서도 예쁜 얼굴이 있고 다 피지 못하고 가는 얼굴이 있대. 성숙하지 못하고 죽은 시체는 모습이 다르대.

- 유서

2010년 12월 수술하기 전날 일산병원 암병동에서 딸에게 '엄마가 수술실에서 그대로 가면 이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1. 알릴 곳은 명단에 적힌 23명이 전부야. 여기만 연락하고 나중에 엄마 찾는 전화가 오면 "언제 가셨습니다."라고 말해주면 돼. 내 휴대전화 유효 기간은 30일이야.

2. 오늘 사망하면 다음날 화장해라.

3. 수의 입힌다고 벌거벗겨놓고 새 옷 입히지 마라. 내가 입은 옷 그대로, 엄마가 늘 덮고 자던 홑이불로 나를 덮어라.

4. 조의금은 받지 마라.

5. 가루는 절대 항아리에 넣어 납골당에 두지 말 것. 그때 상황에 따라 너희들이 처리하기 좋은 방법으로 알아서 뿌리고 싶은 곳에 뿌려라.

6. 절에 가서 49제 하지 마라. 제사 지내지 마라.

이 세상에 와서 70년간 살았던 내 내신성적표를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이니 기도나 염불 잘해준다고 내 내신성적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내 성적표 들고 가서 심판 받을 것이다.

 

부록

1. 엄마가 숨을 멈추면 숨 쉬라고 다른 방법 쓰지 마라. 평안하게 가고 싶다.

2. 화장이 끝나고 유골을 땅에 뿌릴 때까지 엄마가 항상 듣던 CD만 틀어라. CD는 책상 위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 들으면서 환상의 섬 이니스프리로 천당 가는 마음으로 갈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행복하게 가는데 울긴 왜 울어. 너희들이 너무 슬퍼하면 내가 힘들어!

꼭 지켜주기 바란다. 이상.

- 인생에 대한 깨달음은 여행 중 알바니아 소년이 전해주는 그리스의 시어 세 가지를 통해 표현돼.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감정을 뜻하는 '코폴라'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향한 아쉬움, '세니띠스(떠도는 사람)'는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는 자각이야. 소년이 알렉산더를 떠나기 전에 남기는 '아르가디니(너무 늦었다)'는 회한의 순간 발견하게 되는 삶의 영원함을 말해.

알렉산더는 그제서야 소년이 전해준 솔로모스의 시어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그 어떤 위대한 시어보다 아름답고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맨 '불멸의 시어'란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있었던 거야.

· 나는 왜 사랑하는 법을 몰랐을까?

· 왜 우리는 항상 지난 뒤에서야 깨닫는 걸까?

우리는 죽음 앞에서 생의 의미를 깨닫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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