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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장모님 유품 정리하다 ‘기억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았다 본문
[아무튼, 주말]
[손관승의 영감의 길]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길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챙겨 갈까? 모자, 운동화, 옷, 책을 비좁은 가방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필요성의 이유만이 아니라 몸에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 사람마다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전쟁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가 고향을 떠날 때도 증명서, 면도기, 라이터, 상비약과 더불어 가족사진, 집 열쇠 같은 것들이 가방에 들어 있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자 동반자다. 세계적인 조각가 브루노 카탈라노의 ‘여행자’ 시리즈처럼 가슴이 뻥 뚫린 채 가방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일 작가 스벤 슈틸리히의 책 ‘존재의 박물관’에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떠나야 했을 때의 증언이 담겨 있다. 여직원들은 화분, 사진, 고객의 명함과 함께 대부분 책상 밑에 몇 켤레씩 두고 있던 구두를 챙겨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직장은 일터인 동시에 생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많은 중년들이 은퇴를 앞두고 정든 사무실을 비워야 할 때 그들의 심정은 상실감, 딱 그거다. 장소와 공간은 여전히 존재해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된다는 무력감 말이다. 내가 앉던 정든 의자와 책상에 내일이면 다른 누군가가 앉는다는 상상이 유쾌할 리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상실감은 더 크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달 장모님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장가를 가겠다고 처가를 찾아가야 했던 젊은 시절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봉천동 산동네 월세를 살고 있었던 반면, 처가는 압구정동의 아파트였다. 여러 가지로 선뜻 발걸음과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받아주셨다. 세월이 한참 지나 중년의 나이에 내가 직장 문을 나온 뒤 여러 제안을 거절하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아내가 장모님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던 모양이다. 그때 딸에게 해준 장모님의 말씀, “네 남편 눈빛을 봐라. 부드러운 것 같지만 단단하다. 절대로 가족을 굶게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위안과 용기가 되었던지. 힘들 때 믿고 격려해 주면 평소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인간의 신비함이다. 믿어주는 만큼 사람은 노력하는 법이다. 부모 자식, 직장의 상하 관계도 비슷하다.
민족과 종교에 따라 장례 문화가 다르기는 해도 애도 의식은 고인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보았던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였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 장례식장에서 내 가슴 리본에 새겨진 서(壻)라는 한자는 사위를 뜻함을 처음 알았다. 원래는 둘째 사위였지만, 나이가 비슷한 손위 동서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내가 유일한 사위 노릇을 해야 했다. 예정되었던 해외 출장을 부득이하게 취소했어도 징검다리 연휴라 빈소가 너무 텅 비어 있으면 떠나시는 장모님께 면목이 없을 것 같아 내심 걱정도 없지는 않았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그리 흉하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발인 때 맨 앞에서 영정과 위패를 들고 나가며 가난한 청년에게 주었던 믿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기를 빌었다.
유품 정리를 하던 아내는 장모님의 서랍을 열다가 그만 눈물이 터졌다. 서랍 속에 놓여있던 진녹색 가계부와 검은색 탁상 수첩 때문이었다. 제사상에 올릴 품목과 가격, 음식 요리법, 명절 때 자식들이 건넨 용돈 봉투 등을 정갈한 글씨로 적어두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수첩 여백에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 연습하듯 장모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어느 날에는 두 글자로 끝나고, 어느 날은 성만 적혀 있거나 이름의 받침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불행하게도 찾아온 혈관성 치매의 결과였다. 가족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으려 애쓰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고대인들이 동물 뼈나 청동으로 만든 뾰족한 필기구 스틸루스(Stilus)로 ‘나, 여기 세상에 왔었다’며 그림을 남겼던 장면이 연상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 옳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한가운데서도 장모님은 생전에 입던 옷과 이불, 별로 사용한 적이 없는 예쁜 그릇과 유리잔 같은 것을 따로 분류해 두었다.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주변을 정리한다는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는 운동을 이미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본인의 이름까지 상실하는 비극 앞에서도 주변을 깔끔히 정리하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주인을 떠나면 빛을 잃는다. 기부, 재활용,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으로 분류하다가 나는 작은 포도주잔 두 개를 챙겼다. 크리스털 잔을 살짝 튕겨 보았더니 ‘쨍’ 하고 명징한 소리가 장모님 목소리처럼 울린다.
무더운 여름이 지겹다고 투덜거렸는데, 어느새 9월이다. 정말이지 인생은 짧다. ‘다음에 할게요’라고 하지만 다음이 항상 오리란 법도 없다.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작별 의식은 고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중요한 질문을 되새기게 만든다.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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