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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경제)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으로 가는 길 - KDI 경제정보센터 본문

투자

(나라경제)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으로 가는 길 - KDI 경제정보센터

DDOL KONG 2024. 5. 6. 02:57

“우리나라 저출산의 주원인은 경쟁압력,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에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자리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나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리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노동시장 문제에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는 5월, 『나라경제』는 근로자에게 좋은 일자리,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을 중심으로 노동시장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사회 변화에 따른 일자리 전환, 일·생활 균형, 사회안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노동시장과 초저출산의 4가지 연결고리

사상 최저, 전 세계 최저.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따라 붙는 수식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1960년부터 작성된 세계은행 통계의 최저치(2021년 홍콩 0.77명)를 경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는 0.68명, 내년에는 0.65명으로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초저출산 위기는 노동시장 문제와 직결돼 있다. 이는 필자를 비롯한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구진이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2023년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저출산의 주원인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으로 요약된다. 그 핵심에 노동시장 문제가 있는데,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취업 경쟁과 고용 안정성 부족, 워라밸 부족이 경쟁압력과 고용·양육 불안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장래 결혼의향 36.6%에 그쳐…
가정 형성의 격차로 연결되는 일자리 격차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치열한 취업 경쟁과 낮은 청년 고용률이 늦은 결혼 또는 포기로 연결되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결혼과 출산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일자리 경쟁이 치열할수록 취업 준비를 더 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혼과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럼 과거에 비해 청년들의 일자리 경쟁은 더 치열해 졌을까? 실제 조사를 보면 그렇게 나타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신입사원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입 채용경쟁률은 2008년 26.3 대 1에서 2017년에는 35.7 대 1로 높아졌다. 이후 조사치는 없는데 경력직 수시채용이 늘면서 조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최근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 경력직 위주의 채용으로 신입 채용 기회가 줄고 있는 점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청년들의 취업난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결혼 연령도 확연하게 늦춰지고 있다. 남성의 초혼 나이는 1990년 27.8세에서 2023년에는 34.0세로, 여성은 24.8세에서 31.5세로 모두 6세 이상 높아졌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고용 사정은 과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나쁜 걸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양호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고용률로 보면 이는 틀린 말이다. 우리나라 15~29세 인구의 고용률(취업자 수/인구)은 2022년 46.6%로 OECD 평균(54.6%)보다 크게 낮다.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는 25~39세 고용률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75.3%로 OECD 평균인 87.4%에 비해 12.1%p 낮다. 고용의 질 역시 좋지 않은데, 국제비교가 가능한 임시직 비중을 보면 2022년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 중 임시직 비중은 27.3%로 OECD 34개국(평균 11.3%) 중 두 번째로 높아 고용의 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가정 형성의 격차로 연결되고 있다. 앞서 신입 채용경쟁률이 올라갔다고 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대기업-중소기업 간 차이가 극명하다.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경쟁률은 2008년 30.3 대 1에서 2017년 38.5 대 1로 올랐지만, 중소기업 경쟁률은 8.4 대 1에서 5.8 대 1로 오히려 떨어졌다. 대기업으로만 청년이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처우의 격차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질의 1차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과 열악한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제조업체 임금격차는 2000년 1.5배에서 2023년에는 1.9배로 확대됐다. 또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도 2004년 1.5배에서 2023년 1.9배 수준으로 더 벌어졌다. 국민연금 가입률도 정규직은 2023년 88.0%, 비정규직은 38.4%로 차이가 크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격차는 결혼할 의향과 실제 결혼확률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한국은행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25~39세 미혼남녀 1천 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경우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다’라고 답한 비중이 36.6%에 그쳐 취업자 전체의 결혼의향(49.4%)보다 크게 낮았다. 반면 고용 안정성이 높은 공공기관 근무자나 공무원의 결혼의향은 평균 58.5%로 나타났다. 실제 결혼확률을 추적 분석한 문헌에 따르면 특히 남성의 경우 비정규직의 결혼확률이 정규직보다 유의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육아휴직 실이용기간 짧을수록 출산율 떨어져

셋째, 장시간 근로와 워라밸 부족이 출산 기피로 이어졌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매우 긴 편에 속한다. 2022년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37개국(평균 1,752시간) 중 다섯 번째로 높다.

일과 삶의 균형 중 특히 육아와 관련된 워라밸이라 할 수 있는 육아휴직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육아휴직 실이용기간(법정 가능기간×실제 사용률)은 OECD 평균의 5분의 1에서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실제 2000~2021년 OECD 35개국 패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이 짧을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데이터를 이용한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우리나라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늘어날 경우 출산율이 약 0.1명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경우 가사와 육아 부담까지 떠안게 되면서 결혼의향이 저하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를 OECD 29개국 중 ‘일하는 여성에게 환경이 가장 열악한 나라’로 지목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부터 올해까지 12년 연속 한국은 유리천장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하위지표 중 남녀 간 소득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며(여성 소득이 남성 대비 31.2% 낮음), 여성 임원 비율도 최하위권에 있다.

가정과 육아에서도 여성에게 주어지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인구학 석학인 마티아스 도프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료 교수와 함께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률이 낮을수록 출산율도 떨어진다는 논문을 2019년 발간했다. 분석대상 27개국 중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이렇게 차별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가사와 육아의 부담까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상황은 미혼 여성들이 결혼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리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2022년 25~39세 미혼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여성 중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는 비율은 42.8%로 남성(51.1%)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노동시장과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점이 전대미문의 출산율 수치를 통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이를 간과하면 노동인구 부족으로 노동시장에 불균형이 심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게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특집 황인도.pdf
0.76MB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등으로 노동시장 차별 극복해야

노동시장은 노동력이 거래되는 보이지 않는 시장을 뜻한다. 노동과 자본은 시장경제시스템의 근본 요소로,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다만 우리 노동시장은 오래된 병폐가 치료되지 않은 채 상처로 남아 있다.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서로 다른 노동조건이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노동조건이 좋고 고용이 안정적인 노동시장과 그렇지 못한 노동시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이동도 쉽지 않아 차별을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 임금, 대기업의 56.8% 수준
사용자 책임 사각지대 놓인 노동자는 320만 명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예는 임금격차가 대표적이다. 2022년 기준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시간당 임금의 70.6%에 머물러 있다.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는 더욱 커서 300인 미만 기업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 시간당 임금의 56.8%에 불과하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성별 임금격차를 봐도 남성 대비 여성의 상대임금은 69.8%에 머물러,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고민해 볼 것은 고용형태별, 기업규모별, 성별 임금격차가 차별적인지, 아니면 정당한지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남성과 여성 간에 일이 구분돼 있지 않으며 같은 일을 한다면 고용형태나 기업규모와 무관하게 같은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성과 남성 간의 임금 차이는 10~20%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은 첫째, 임금에 직무가치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 노동의 직무가치가 객관적으로 평가돼 보수가 결정되기보다 근속, 기업의 지불능력, 노동조합의 교섭력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는 데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에 비해 낮은 이유는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이 32개월로 정규직의 근속기간(평균 98개월)보다 짧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시간당 임금이 중소기업보다 높은 이유는 회사의 지불능력도 감안해야 하지만 노동조합이 회사에 높은 보수를 지불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즉 회사의 지불능력은 노동조합의 지불하게 만드는 능력으로도 볼 수 있다.

둘째,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사용자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라는 이유로 임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혹은 수요-공급의 시장 거래만으로 임금이 결정된다면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초기 자본주의의 혼란은 대공황 이후 복지국가 모델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부여해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가 여러 의무를 져야 함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노동관계법의 준수 및 사회보험 분담과 교섭에 응할 의무 등이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실질적인 사용자 역할을 하면서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선호한다. 대표적으로 사내하청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의 경우 원청 혹은 계약기업이 보수 등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사용자 책임은 면제돼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르고 특고가 220만 명 이상에 달하므로 적어도 320만 명 이상은 자신의 보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돼 있는 것이다.

셋째, 기업별 교섭체계를 가진 노동조합의 한계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경우 사용자와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지만 작은 사업장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이 어려운 것은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외국의 경우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 수준의 교섭을 하고 있으며 교섭 결과가 조합원만이 아니라 비조합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더라도 프랑스나 호주 등에서는 교섭 결과가 동일 산업이나 업종 노동자에게도 적용되고 있으며, 스웨덴 등은 산업별 노동조합이 소규모 사업장까지 폭넓게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다.

넷째,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종합적인 전략의 부재다. 정부는 양질의 노동시장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궁극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2002년 비정규직 통계 정비와 특고 보호 관련 대책 수립,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2014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거나 노동시장 내 차별을 완화하지 못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중요한데, 지나치리만큼 사용자를 고려하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결과를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초기업 교섭 확대 통한 부의 재분배 실현도 대안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동안 근본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것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제대로 시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첫째,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와 직무가치를 반영한 임금체계를 안착시켜야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는 당장 임금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임금에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나아가 직무가치를 바탕으로 한 임금체계는 직무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맞는 임금체계를 개발하는 것인데, 노사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초기업 교섭의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 임금격차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교섭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 것이다. 초기업 교섭은 같은 업종과 산업 내 임금의 평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설이나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공공부문인 교육공무직 등에서 초기업 교섭이 활용되고 있다. 초기업 수준의 교섭은 사용자의 개념을 사업자 단체 등으로 확대해 추진할 수도 있다. 이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제30조3항)을 통해 초기업 교섭을 지원하는 내용이 명시된 만큼 정부는 초기업 교섭을 확대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의 병행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임금격차 축소는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 지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안을 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기업을 설득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축소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가 정책 설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경쟁·대립하지 않도록 국정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소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통합적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특집 정흥준.pdf
0.90MB




워라밸 중요해진 지금, 유연한 근무방식의 확산 노력 필요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현상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선 지 20여 년이 됐지만 결혼과 출산을 기피 또는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경제 구조와 인식으로 저출산 현상은 계속해서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 일·생활 균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며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지속돼 온 장시간 근로의 개선 및 근로자의 시간 주권 확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더욱 커지고 있다.

OECD 평균보다 연간 155시간 더 일하는 대한민국

일·생활 균형이 우리 노동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최근 이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에 비해 한국의 일·생활 균형 수준은 현재까지 매우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취업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인 1,719시간보다 155시간이 많다. 국가 간 국민들의 행복도 비교에 자주 활용되는 OECD ‘더 나은 삶 지수’에서도 2022년 기준 한국은 38개국 중 32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주관적 지표인 삶의 만족도(2019~2021년)는 10점 척도에서 5.9점으로(OECD 평균 6.7점)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초저출산 현상은 이러한 경제·사회 여건 속에서 개인들이 합리적 선택을 한 총체적 결과임을 생각할 때, 저출산 대응책의 열쇳말은 개인의 ‘삶의 질 보장’이 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일·생활 균형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기본 전제라는 점에서 주요한 국정 의제로 다뤄져야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고용노동정책에서 일·생활 균형을 위한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3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노동자의 시간 주권 확보를 강조했지만 연장근로 단위를 유연화하려는 계획이 ‘장시간 집중 노동’을 가능케 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그해 11월 현행 주52시간 틀은 유지하되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개편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노사정 대화라는 단서를 달고 일부 업종과 직종으로 범위가 좁혀지긴 했지만, 향후 주52시간제 유연화의 확산을 야기하고 현실에서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한편 지난 3월 주52시간 상한제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기 어려운 사회 구조,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하게 협상하기 어려운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주52시간 상한제의 강제 적용이 필요하다고 적시한 바 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 판결의 배경에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고 해석된다.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해서는 적정한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나머지 시간을 가정생활과 여가활동에 적절히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 확보가 기본 전제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일·생활 균형은 워라밸이라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의 삶의 지향점이 바뀌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한 정책의 비전, 목표, 계획 및 지침을 명확히 설정하고 지속적·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제도의 개선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먼저 근로시간 제도와 관련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근로일 간 최소 휴식시간 제가 일반적으로 도입돼야 한다. 또한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를 도입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의 실근로시간을 면밀히 기록·관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용자의 근로시간 규제 준수 의식을 높이고 근로시간에 대한 근로감독을 용이하게 해 실근로시간 단축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의 생활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문자메시지, SNS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제한하는 연결차단권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짜 야근’과 과로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포괄임금에 대한 제도 개선 및 법적 규제방안도 논의돼야 할 것이다.

과정에 대한 통제보다는 결과를 강조하는
직장문화 구축 필수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해 근무시간과 장소에 있어 근로자의 재량권과 통제권을 확대하는 유연한 근무방식의 확산 노력도 필요하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유연근무제의 긍정적 효과가 실증적으로 검증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들은 유연근무제 도입에 미온적이다.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유연근무제 활용률은 2016년 4.2%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2021년 16.8%까지 증가했으나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인다. 한편 2023년 조사에서는 현재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지 않는 임금근로자 중 47%가 유연근무제 활용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생활 균형의 증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유연근무제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에 따라 계층화돼 있다는 사실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유연근무제 활용 근로자 가운데 상당수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로 나타나 2차 노동시장에 속한 근로자들에게는 유연한 근무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대단히 제한적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연근무제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유연근무제가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한 제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업무 과정에 대한 통제보다는 업무 결과를 강조하는 직장 문화 구축이 필수적이며, 조직 내 신뢰 구축이 전제돼야 유연근무제의 도입·유지가 가능하다. 둘째, 자녀가 있거나 돌봄 책임을 지고 있는 근로자들의 경우 일과 생활의 경계 없이 이중적 부담을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촘촘한 양질의 돌봄서비스 제공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유연근무제가 노동자 스스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늘리는 자기 착취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유연근무제의 낙인효과를 막고 유연근무제가 근무방식의 표준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집 손연정.pdf
0.74MB




기후위기가 촉발하는 산업구조 변화에 공정한 일자리 전환 정책으로 대응을

2015년 파리협정 이후 국제사회는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14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영국, 프랑스, 덴마크 등의 경우 탄소중립을 법제화했다. 한국은 2021년 9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세계에서 14번째 탄소중립 법제화 국가가 됐다. 우리의 탄소중립추진은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 목표 선언을 계기로 시작됐다.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 일련의 탄소중립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한국판 뉴딜을 통해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분야별·연도별 재정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탄소중립 이행 위한 R&D와 기술혁신이
직종별·직무별 편차 야기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이 영(零)이 되는 상태로 정의되며, 탄소중립 실현은 경제사회 전반에서 탄소 배출의 감소를 요구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감축의 수단으로서 화력발전, 수송(내연기관차) 등 고탄소 업종을 중심으로 한 배출량 감축, 특히 석탄화력발전에서 화력발전 전면 중단을 통해 제로화한다. 재생연료로의 에너지 전환, 전기차·수소차 등 무공해차 보급 확대와 내연기관차 비중 축소,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향상 등으로 산업의 생산방식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대중교통 이용 확대, 1회용품 사용 제한, 업사이클링·리사이클링 확산 등 규제가 사람들의 소비(수요), 생활방식에서의 변화를 촉구한다. 산업의 생산방식, 소비·생활수요의 변화를 통해 저탄소 산업구조로 전환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R&D,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정책 수단이 수반된다. 정책 추진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은 경기부양을 통한 신규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의 원천 역할을 한다. 해당 산업에서 직접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게 되고 기술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통해 여타 직간접 연관 산업의 생산과 수요 증대로 파급될 수 있다. 미국의 「인프라투자법(IIJA)」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일본의 ‘그린성장전략’,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글로벌 기업의 RE100 선언 등을 탄소중립 달성과 함께 자국 산업의 보호, 미래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R&D, 기술혁신 등 정책 수단이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술의 발전은 대체로 공정혁신으로 자본재에 체화되며 자본재 구매 비용 하락이나 성능의 개선으로 구현된다. 생산비용의 절감을 추구하는 기업은 노동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자본재를 더 투입하게 되고 고용은 이전보다 감소하게 된다. 흔히 자동화 도입과 노동의 대체로 나타난다. 향상된 자본재는 특정 숙련을 보유한 노동과 결합해 생산활동에 투입될 수 있다. 새로운 자본재 투입의 증가는 이와 보완적인 숙련도를 지닌 노동의 수요 증가로 나타나고, 고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러한 보완효과는 수요와 생산이 증가하면서 대체효과를 상쇄하고 전체적인 고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제품혁신의 경우 수요와 생산, 고용의 증가로 나타난다. 연관 산업이 지리적으로 집적·연계된 산업클러스터의 경우 저탄소화 정책은 해당 산업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자동차(내연기관차) 제조업, 석탄화력발전 등이 대표적이다. 기후위기와 그에 대응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전환 전략에 따라 적극적인 재정투자와 제도개선을 수반한다. 탄소집약적인 산업은 정체 또는 축소될 것이고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영역은 빠른 성장을 보일 것이다. 생산의 파생 수요로서 고용, 일자리의 변화도 수반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신산업·신기술 분야 일자리는 늘어나고 고탄소·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는 감소할 것이다. 따라서 산업과 직종·직무에 따라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예상되고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후위기가 촉발하는 전환은 인구구조의 변화, 시장 트렌드의 변화와 달리 정부 정책으로 이뤄지는 변화라는 특성을 가진다. 전환에 따른 충격을 받는 기업과 노동자를 위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소위 공정한 전환을 위한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대체산업 및 신산업 육성해 새 일자리 만들고
새로운 숙련에 대한 교육훈련 필요

첫째, 전환 근로자의 재취업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일자리가 산업의 유치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체산업, 신산업 등의 육성은 지역특화산업, 지역전략산업 등 정책과 연계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과 산업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지역의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 균형발전에 시너지가 된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이며,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지가 예정된 충남 당진, 태안, 보령 등의 지역은 대체산업 선정·육성을고려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일자리가 요구하는 숙련을 충족하기 위해 교육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일자리 전환에 대응한 교육훈련은 매우 중요한 노동시장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탄소화 정책에 따른 산업 전환 경로는 명확하게 예정돼 있기 때문에 일자리 전환 대상을 특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30 NDC,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탄소중립 실행 계획에 따라 2025년부터 2036년까지 충남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지가 진행될 예정이다. 사전 접촉을 통해 직무 전환 지원, 전직·재취업 지원 등 교육훈련 수요를 파악하고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숙련에 대한 체계적 조사·분석과 이에 기초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셋째, 교육훈련 이후 이직·전직 등 취업알선 고용서비스와의 연계 지원이 필요하다. 일자리 전환에 대응하는 훈련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훈련 이후 근로자의 안정적인 일자리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경력설계, 취업상담, 일자리 정보제공 등을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 신산업·신기술 분야로의 이직·전직뿐만 아니라 재직자의 창업에 대한 수요도 반영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장년 또는 퇴직을 앞둔 재직자의 경우 신산업·신기술 분야의 고숙련 습득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고, 훈련 참여에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

넷째, 일자리 전환 기금 조성을 통해 재직자의 훈련 참여에 따른 임금 손실을 연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훈련 참여와 이후 취업알선 연계 등 완전한 일자리 전환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일자리 전환에 대응하는 훈련에 참여하는 것을 제약하는 요인은 교육 시간 확보와 훈련 비용 부족 등이다. 이는 장시간에 걸친 전환 훈련이 필요함에도 1개월 미만의 단기간 훈련을 선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다섯째, 이러한 모든 지원은 전환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간 사회적 대화와 협력에 기초해야 한다.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책임이 동반되는 거버넌스 구축과 갈등 최소화를 위한 전환 전략·계획 수립 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체산업 선정에서 효율성과 공정성이 대립할 수 있고 임금(소득) 보전의 범위와 규모에서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다. 또 전환이 예상되지만 사회적 편견과 인식·공감대 부족으로 훈련 참여가 미온적일 수 있다.

특집 전주용.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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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언제부턴가 일하는 방식과 고용형태가 다양화됨에 따라 용역, 도급, 프리랜서 등 다양한 명칭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프리랜서 실태조사나 한국고용정보원의 플랫폼 종사자 대상 조사 등 공식적인 실태조사를 보면, 이들은 노동법 적용 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 보수 미지급, 비용이나 손해의 부당한 부담, 사전협의 없는 보수 삭감, 계약 외 업무 부과 등의 문제에 노출되고 있다.

특고, 플랫폼 종사자 등 새로운 형태 일자리,
노동법상 근로자인지 여부 다퉈지는 경우 많아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주요 노동관계 법령들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에게 적용된다. 근로자의 법적 개념은 각 법률의 취지와 목적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근로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판례를 통해 형성된 복잡한 법리에 따라 판단된다. 현실에서는 근로자인지 아닌지 불명확한 경우도 많아서 법적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사회적·경제적 약자로서 생계를 유지하고자 업무를 맡긴 사람 혹은 보수를 지급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도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고용형태의 사람들에게도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에 오래전부터 국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1997년부터 이러한 문제를 논의했고, 2019년 OECD도 전통적 고용형태를 벗어나는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법적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동법적 보호제도가 적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소득의 대부분을 단일한 사업주에게 의존하는 등 종속성이 강한 자영업자 등에 대해 노동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이하 특고)를 비롯해 기존의 특고 개념을 대체해 최근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고용보험법」 등에 규정된 ‘노무제공자’,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급격히 증가한 플랫폼 종사자 등이 노동법상 근로자인지 여부가 다퉈지고 있다.

특고, 노무제공자, 플랫폼 종사자 등이 고용형태에서 전통적인 근로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들이 노동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고,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실질을 파악해 근로자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사례별로 근로자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만 노동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완화해 근로자의 범위를 확대한다 하더라도 과학기술과 사회 발전에 따라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일하는 사람들을 신속하게 노동법의 보호범위 내로 포섭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방치한다면 마치 과거 자본주의 발전 초기 단계에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못하던 것과 같은 상황을 야기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다양한 고용형태의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도록 법의 보호 범위 내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 노동의 개념 정의, 가치평가, 의미 부여 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포괄적 형태의 새로운 입법 추진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가 과제

현행법 중에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노무제공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을 위한 제도가 일부 마련돼 있고, 주로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적용 확대를 중심으로 보호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 왔다. 그렇지만 보다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해 근로자들의 인간의 존엄성, 적정한 계약조건 내지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등 기존 노동관계 법령상 규정돼 있는 내용 중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법적 권리와 보호에 관한 내용의 범위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필요한 경우 다른 개별 법령 혹은 행정규칙, 지침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정할 때 기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포괄적인 형태의 입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형식의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경우, 현행법상 이미 도입돼 있는 관련 제도들을 아우르면서도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보호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포괄적인 법적근거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능한 한 많은 대상을 널리 포섭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률 내용이 다소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률의 제정은 보다 구체적인 개별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부의 정책 마련과 시행을 통해 실질적 보호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입법을 통한 일하는 사람의 권리보장은 헌법상 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입법에 포함돼야 할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일하는 사람과 그 상대방(노무이용자 내지 사업자) 간 교섭력의 불균형을 고려한 일하는 사람의 계약 자유 보장을 위한 권리, 일하는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인격권, 평등권 보장을 위한 권리, 일하는 사람의 건강권, 생존권 보장을 위한 권리, 일하는 사람의 모성보호, 가족 돌봄,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한 권리,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분쟁을 보다 신속하고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한 공적 제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노동법 사각지대 축소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문제다. 현재 5인 미만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 적용된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규정은 부당해고 금지 규정,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관련 규정, 해고의 서면 통지, 부당해고 구제 신청, 휴업수당, 법정 근로시간, 연장근로·휴일근로·야간근로에 대한 수당, 연차휴가, 생리휴가, 18세 이상 여성근로자가 야간 근로할 때의 동의, 유급 수유시간에 관한 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등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사업주 역시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인 경우가 많고 근로감독 등 노동행정의 부담이 크다는 점 등이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고, 이러한 점이 정책적으로 고려돼야 할 필요는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사업실태 현황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은 115만4,517개로 전체 사업장의 61.9%이고, 근로자 수는 283만5,754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6.5%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만 적용하게 한 현행 법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1989년이고,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할 조항을 시행령으로 정하게 된 것은 1998년이다. 그동안 이뤄진 우리 경제와 사회의 발전 정도를 고려할 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하면서 노동에서의 양극화 해소를 말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특집 박귀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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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노동의 상생적 비전 보여줘야 할 때”

현재 우리 노동시장을 진단한다면.
노동시장은 경제·산업 활동의 가장 핵심적 자원인 ‘인력’을 공급하는 곳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은 산업 발전을 감당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인재들을 배출하고 공급했기에 가능했다. 이 노동력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고, 노동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하는가를 둘러싸고 노동시장 나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현실의 노동시장을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노동시장의 격차와 불평등이 굳어지고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또 일자리의 양보다 질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고용이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태다. 이 외에 산업구조의 변화, 기술 발전에 노동시장이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도 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시장 격차가 유독 큰 이유는?
노동은 경제에서 파생되는 영역이다. 우리나라는 재벌 중심의 경제개발을 하면서 경제의 양극화가 생겼고, 이것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이어졌다. 대만만 하더라도 중소기업, 강소기업과 대기업이 잘 어우러지는 경제체제로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1987년 이전까지는 우리 노동시장 임금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대기업의 임금을 100이라 했을 때 중소기업 임금 수준은 95였다. 노동계가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대기업까지 억눌려 있었던 것이다.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며 버는 만큼 나누자는 시장주의가 전면화됐고, 그 이면에서 노동조합의 활성화, 즉 노동운동이 일어나며 격차가 가파르게 확대됐다. 지금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50%대까지 떨어졌다. 또 성별 격차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제도적인 역사성 속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비정규직 문제는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시작돼 굳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노동시장 개혁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데, 정책이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노동시장의 문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거나 더 악화하고 있다.

그간 노동개혁이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개혁은 크게 3개의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첫째, 노사 간의 이해정치, 둘째, 제도권 내 정당 간의 정치, 셋째, 지식인과 언론 등의 담론정치다. 아무래도 보수정당은 친기업, 진보정당은 친노동 성향을 보이면서 노사의 입장이 고스란히 각 정당의 정책 대결로 나타나고 언론 등을 통해 여론이 증폭된다. 노동개혁이 워낙 치열한 이슈다 보니 풀어나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노동시장 내 격차를 줄이려면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노사 간의 공감과 타협을 만들어내고 양보하게끔 하는 실력이 필요한데, 정권마다 반대 진영의 반발을 겪으면서 의도한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선 노동시간 단축, 후 유연화를 제안할 수 있겠다.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근로시간을 줄인다면 근로자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저항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미 장시간 일하고 있는데 유연화까지 되면 더 일하라고 할까 봐 반발하는 것이다. 유연성과 안전성을 조화시켜 통합을 추구하는 ‘유연안전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또 상생적인 개혁모델이 필요하다. 기업과 노동계가 ‘all or nothing’의 대결구도에 있을 것이 아니라 양쪽의 입장과 형편을 존중하며 상생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측은 고용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노동계는 노동생산성이나 유연성 측면에서 바꿀 부분이 있다.

유연안전성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은?
본보기로 덴마크 사례를 들 수 있다. 덴마크는 자유로운 해고를 가능케 하며 기업이 바라는 유연성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대신 직전에 받던 임금의 90%를 정부에서 실업급여로 지급하는 안전망을 제공했는데, 정책 시행 초기에는 그 지급기간이 무려 48개월이었다(현재는 24개월). 해고된 사람들이 새로운 직종·산업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준 것이다. 또 덴마크는 기술이나 산업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국가로, 일자리 수요 변화에 맞춰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고 일자리를 매칭하는 역할을 잘한다. 이렇게 유연한 노동시장, 관대한 사회보장제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는 골든 트라이 앵글이 작동하며 덴마크는 또 다른 도약을 만들어냈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의 조건이 궁금한데.
EU에서 미래 사회에 대한 원칙으로 ‘more and better jobs’ 개념을 선언했다. 일자리에 ‘better’, 즉 질 개념이 들어간다. 일자리의 질 측면에서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임금이 생활을 떠받칠 만큼 충분하고, 작업환경이 안전해야 한다. 또 4대 보험 등 제도화된 안전망과 노동권이 갖춰지면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촉진할 방법은?
‘창출’이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일 수 있지만 어떤 퀄리티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고용의 안정성, 소득의 문제, 노동조건,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여건을 사회적으로 갖추게 되면 어떤 일자리든 좋은 일자리가 된다. 일자리 양에서는 ‘잡 셰어링’ 개념과 연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 주에 60시간씩 장시간 일하던 것을 40시간으로 줄이면 두 사람 일자리를 세 사람 일자리로 늘릴 수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유연안전성의 중요한 해법이 셰어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구조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미래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이제까지는 주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되는 식이었는데, 지금 AI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에서는 사람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지금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어떻게 일자리를 지킬지 혹은 나눌지에 대해 노사, 정당, 지식인, 언론에서 고민하고 논의할 때다. 양극화라는 당장의 문제를 다투느라 기후위기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화두를 놓치고 있는 것은 매우 큰 문제다. 그런 점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독일 사례다. 독일은 산업개혁인 인더스트리 4.0과 노동개혁인 아르바이트 4.0을 같이 추진했다. 산업, 경제, 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꾀하는 한편 그 충격을 최소화하고 혁신을 능동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노동의 변화도 병행하는 것이다. 한쪽에선 산업만, 한쪽에선 노동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독일처럼 산업과 노동의 상생적인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위해 한 말씀.
연구학기로 덴마크에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인상 깊던 기억 중 하나가 30~40대 젊은 직원들이 오후 3시면 모두 퇴근하고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나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었다. 이런 나라라면 출산에 대한 저항이 없을 것 같았다. 이게 지금까지 말한 근로시간, 소득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또 지금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사회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면 미래세대를 낳고 키우는 것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현실 등 현재의 삶에 대한 불안과 여러 어려운 여건들이 맞물려 있는 현 상황을 살펴봐야
할 때다.

특집 이병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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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ork.moongong.co.kr/ebook/kdi/vol402/index.html


https://eiec.kdi.re.kr/userdata/nara/202405/202405.pdf
 

https://eiec.kdi.re.kr/publish/naraList.do?fcode=00002000040000100001&sel_year=2024&sel_month=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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