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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 직면한 해상풍력… 바람이 심상찮은 이유[딥다이브] 본문
바다 위에 서서 돌아가는 수십 개의 하얀 바람개비. ‘해상풍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청량하고 웅장하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데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의 대표 주자, 해상풍력 업계의 기류가 심상찮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잇달아 중단되더니, 급기야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 오스테드까지 미국 일부 프로젝트의 ‘포기 가능성’을 운운합니다.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순풍을 만난 줄 알았던 해상풍력 산업이 예상외로 난관에 부닥쳤는데요. 오늘은 역풍 만난 해상풍력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등골 오싹한 해상풍력 뉴스들
지난달 30일 덴마크 기업 오스테드(Orsted) 주가가 25% 추락했습니다. 덴마크 기업 오스테드는 세계 1위 해상풍력발전 개발업체인데요. 이날 실적 발표에서 오스테드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와 관련해 총 23억 달러(약 3조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매즈 니퍼 CEO는 “우리 기준에 맞는 가치 창출이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그만둘 수도 있다”라고도 말했죠. 이대로 가면 너무 돈이 안 돼서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하소연입니다.
이에 “오스테드 발표가 업계 관계자 모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덴마크 시드뱅크의 주식분석책임자 야콥 페더슨)는 분석이 나왔죠. 1위 업체의 폭탄선언에 관련 업체들 주가도 줄줄이 내리막을 탔습니다.
수주한 프로젝트에서 돈을 벌지 못하게 생긴 해상풍력 개발업체는 오스테드만이 아닙니다. 스웨덴 기업 바텐폴(Vattenfall)은 지난 7월 20일 영국 북해에서 진행하던 1.4GW 규모의 프로젝트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죠. 계속 진행하는 것보단 지금까지 들어간 55억 스웨덴 크로나(약 66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계산입니다. 안나 보르그 CEO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스페인 기업 이베르드롤라(Iberdrola)는 지난달 미국 매사추세츠 해상풍력 프로젝트(1.2GW 규모) 계약을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위약금 48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는데도 말이죠. 입찰 시점인 2021년 9월과 달리 지금은 수익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수익성 악화라는 암초에 걸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업계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일단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겁니다. 바로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 강풍에 휘청
고금리와 고물가. 이미 1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어 익숙한 이슈들인데요. 이게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이제 기업을 휘청거릴 정도가 된 건데요.
해상풍력은 수주에서 완공까지 7~8년이 걸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업비도 보통 수조 원 대에 달하고요. 초기 투자비가 워낙 많이 들다 보니 금리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테드는 3조원으로 예상되는 미국 프로젝트 관련 손상액 중 거의 1조원이 이자율 급등 탓이라고 밝혔죠.
게다가 모든 비용이 무섭게 뛰고 있습니다. 터빈 값도, 타워 값도, 하부구조물 값도, 인건비, 자재비, 공사비까지. 바텐폴이 지난 7월 성명에서 올해 들어서면 사업비용이 40% 뛰었다고 밝혔을 정도인데요. 특히 해상풍력 개발업체들이 주로 유럽 회사라는 점도 비용급증을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이슈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축구장만 한 블레이드의 문제
그렇다고 외부 환경 탓만 할 건 아닙니다. 해상풍력 업계 스스로 공급망 차질을 자초한 부분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문제가 이겁니다. 축구장보다 더 길어진 터빈 블레이드.
풍력발전기 효율성은 터빈 블레이드 길이와 관련이 큽니다. 길이가 더 길수록 한번 회전에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내죠. 그래서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경쟁적으로 블레이드 길이를 키웠습니다. 스코틀랜드 기업 SSE의 최신 터빈은 블레이드가 107m에 달한다죠. 축구장 길이(가로 105m)보다 깁니다.
길어진 블레이드, 높아진 효율성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풍력 에너지 비용은 60%나 낮아졌습니다. 업계의 경쟁이 그동안 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 된 건 분명하죠.
하지만 이제 그만 커져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터빈이 너무 크고 무거워져서 이를 감당할 선박도, 항구도, 크레인도 크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업계가 공급망 차질로 동동거리게 된 데는 러-우 전쟁 못지않게 너무 길어진 블레이드 탓이 큽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우드맥켄지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풍력 설치용 선박 중 약 절반은 최신 터빈 모델에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를 교체하는 데는 막대한 투자비(약 130억 달러 추정) 못지않게 오랜 시간도 걸릴 거고요. 오스테드 역시 미국 프로젝트에서 큰 손실이 불가피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선박공급 지연을 꼽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크기 경쟁 그만하자’는 업계 목소리가 커집니다. 아예 터빈 크기 상한선을 정하자는 논의도 있는데요. 하지만 합의에 이를진 의문입니다. “만약 GE가 더 큰 터빈을 출시하면 지멘스 가메사는 즉시 이에 대응할 거고, 그럼 베스타스도 압력을 받게 될 것”(컨설팅사 브링크만 연구 책임자 사시 바를라)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보조금만이 살길?
공사비가 치솟아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업을 접든지, 아니면 수익을 늘릴 곳을 찾아야겠죠. 그래서 지금 해상풍력 업체들과 환경단체들이 힘을 합쳐 요청하고 있습니다. 해상풍력에 더 많은 보조금을 달라고요.
영국에선 지난해 해상풍력 개발업체들과 맺었던 15년 고정 전기가격을 올려주자는 논의가 나옵니다. 원칙엔 어긋나지만 인플레이션 등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주자는 주장인데요.
영국은 해상풍력 개발단지를 입찰할 때 전기를 얼마에 사줄지 그 가격을 미리 정해 계약을 맺습니다. 지난해 입찰 된 프로젝트들은 이 가격이 MWh(메가와트시)당 37.35파운드로 낙찰됐죠. 나중에 실제 전기가 팔리는 가격이 그보다 낮게 떨어지든, 높게 오르든 발전업체는 37.35파운드를 15년 동안 받는 구조입니다.
그동안은 이런 방식이 괜찮았습니다. 해상풍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려는 영국 정부와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개발업체의 니즈가 서로 맞아떨어졌죠.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들 때문에 균열이 일어났고, 바텐폴처럼 두손 들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2030년 해상풍력 50GW(현재는 14GW)’라는 목표를 고수하는 영국 정부 입장에선 기업들의 앓는 소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스테드가 이번에 뉴저지 프로젝트 포기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강조한 건 세금 공제 혜택을 최대로 달라는 겁니다. 미국의 IRA 법은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미국산 강철사용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 30%의 세금 공제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에너지 관련 지역사회에 기여하느냐에 따라 10%를 추가해, 최대 40%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죠.
미국 정부의 현재 지침대로 하면 오스테드가 이를 다 받아내긴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이에 오스테드뿐 아니라 환경단체들까지도 IRA 지원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입니다. “모든 혁신과 변혁이 잘 수행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해상풍력은 공급만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논리이죠. 참고로 바이든 정부는 2030년까지 30GW 용량의 해상풍력 발전을 설치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녹색에너지 전환은 공짜 아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보조금을 더 달라는 기업의 요청은 좀 불편합니다. ‘수익성 없을 줄 알았다’며 해상풍력 자체에 대한 회의론을 펼치는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죠. 특히 미국에선 ‘도대체 왜 미국기업도 아닌 외국기업에 그렇게 지원하면서까지 친환경으로 가야 하지?’라는 정서가 꽤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공화당원들이 그런 시각이 강하죠. 마이클 데스타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급망 문제와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프로젝트(해상풍력)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이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높다는 걸 증명합니다. 우리 국가가 짊어질 부담입니다.”
일부 단체는 새로운 반대 논리도 개발했습니다.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이 고래에게 위협이 된다는 주장인데요. 최근 부쩍 뉴저지 해안에서 죽은 혹등고래가 늘었는데, 이게 풍력 발전과 관계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근거는 미약해 보입니다. 미국 동해안에서 혹등고래 사망 급증 현상이 나타난 게 프로젝트 시작 한참 전인 2016년부터이기 때문인데요(국립해양대기청은 그 원인을 ‘선박 충돌’로 판단). 그럼에도 이 반대운동은 꽤 효과적인지, 뉴저지 지역의 해상풍력 발전소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2019년 76%→현재 54%). 이를 두고 환경단체 측은 “석유·가스 산업과 연결된 세력이 조직화한 거짓 캠페인”이라고 반박하고 있죠.
친환경 바람을 타고 순항할 줄 알았던 해상풍력 시장이 흔들린다고 해서, 갑자기 해상풍력 무용론으로 돌아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바람이 강하고 안정적인 데다, 소음 같은 민원 발생 이슈도 적다는 게 해상풍력의 장점을 꼽히죠. 한국처럼 국토는 비좁은 데 바다는 풍부한 나라에 특히 유리하고요. 다만 해상풍력 산업이 앞에 놓인 여러 과제들이 이번 기회에 드러난 겁니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 예상보다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녹색에너지로의 전환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여기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케이블 부족과 그리드 연결 지연도 해상풍력 개발의 난관으로 꼽힙니다. 이 부분은 한달 전 썼던 딥다이브 전력망편을 참고해주십시오. 그럼 오늘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 오스테드가 ‘미국 풍력발전 프로젝트와 관련해 약 3조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해상풍력 업계가 떨고 있습니다. 이미 수주한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던 차에 나온 폭탄선언입니다.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게 원인입니다. 올해 들어서만 개발비용이 40% 급증했다는데요. 업계의 ‘더 큰 터빈 블레이드’ 개발 경쟁이 선박과 항구, 크레인 같은 공급망 차질을 더 부추겼다는 지적입니다.
-기업들은 더 많은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영국에선 전기가격 계약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하고, 미국에선 세금공제 기준을 낮춰달라고 하죠. 환경 단체들도 이에 맞장구치고 있습니다. 녹색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519114?typ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