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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초고수다. 인정욕구, 모멸감 그리고 자존감에 대해서 본문

일상

우주초고수다. 인정욕구, 모멸감 그리고 자존감에 대해서

DDOL KONG 2020. 11. 20. 06:57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렬한 정신적 욕구는 무엇일까?

인정욕구라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고,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물욕과 성욕마저도 포기하고 일생을 수행에 정진하는 산사의 스님들도 명예욕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인간이 가진 욕구 중에 가장 고차원적이면서 가장 우리가 원하는 감정은 바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당신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예를 들어보자.

명품을 사입고 해외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비싼 시계를 차고 럭셔리 자동차 핸들을 잡고 있는 모습을 카카오톡에 올리는 것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인터넷에 관종과 어그로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모두 주목받고 사랑받고자하는 인정욕구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데 인정욕구가 부정당하고 위협받을 때 분출되는 어둠의 감정이 있다.

바로 ‘모멸감’이다.

모멸감은 모욕당하고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고 비하당하고 경멸당하고 부당하게 대우받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모멸감으로 받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고 망각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 박사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쓴 “죽음의 수용소 (Man's search for meaning :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에서 이러한 말이 나온다

유태인이 수용소에 도착하면 첫날 90%는 가스실로 가서 죽는다. 여기서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언제 가스실로 보내질지 모를 죽음의 공포, 언제 날라올지 모를 구타와 학대, 배고픔과 추위등의 육체적 고통을 당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정신적 모멸감이라고 했다.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해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게 아니고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타인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비웃고 조롱하고 하대하고 깔보는 것은 상대방의 인정욕구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위협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그래서 모멸감을 느끼면 우리는 울분을 토하고 폭발하는 것이다.

그러니 함부러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지마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주인집 사장을 죽인 이유는 바로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지존파의 예를 들어보자.

지존파는 돈을 빼앗기 위해서 부자를 납치하고 살인하고 시체를 소각하는 소각장까지 만들었다.

지존파의 강령은 ”부자를 저주한다.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였다고 한다.

무고한 커플을 납치해서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강간하고 죽였다.

시체는 소각했다.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

지존파 7명 대부분은 사형을 당하기 전에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회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끝까지 참회하지 않은 한명은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지존파 그들은 왜 괴물이 되었을까?

모두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어린 시절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 시간에 돈이 없어서 크레파스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김기환을 웃통을 벗기고 복도에 서있게 하는 벌을 세웠다고 한다.

그때 김기환은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김기환은 어린 시절 자기에게 선생님이 그런 수치와 모욕을 주는 일이 없었다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부짖으며 고백했었다.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선생님이 그런 모욕과 멸시를 주어서 어린 영혼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면

지존파란 비극은 피할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는 모멸감이 만연해있을까?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많다.

웬만해서 존재감을 뿜어내기 어렵다.

그런데 손쉽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타인을 모멸하는 것이다.

타인을 모멸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과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경멸함으로 쾌감을 느끼고,

바람빠져 쪼그라든 풍선같은 허약한 자존감을 부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는 사람들이 타인을 심하게 차별하고 비하하고 모욕하기 쉽다.

인터넷의 악플들에서 그러한 예를 많이 볼수 있다.

”무주택거지들“

”전라도xx“

“거지동네”

등등

그들은 왜 그렇게 타인을 차별하고 모욕하게 되었을까?

그들 역시 모멸감으로 상처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상처받았다고 똑같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권리는 없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생체실험이 자행되는 수용소에서 어떤 이는 돼지처럼 행동하지만 또 어떤이는 다른 수감자를 위로하고 자신이 가진 마지막 빵까지 나눠주며 성자처럼 행동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2가지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하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자유라는 것이다.

인간생존의 극한상황인 수용소에서도 성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환경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를 만든 악날한 인간도 있지만,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의연하게 가스실로 걸어 들어 갈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환경에 무조건 휘둘리고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는 우리의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걸 박탈당하는 강제수용소에서 조차도 자유를 박탈할 수 없었다고 빅터 프랭클 박사는 증언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내가 모욕당하였다고 해서 타인에게 모욕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자기가 당한 모욕을 그런 식으로 복수하지 않는다.

자존감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진짜 스스로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약한 자를 경멸하고 모욕주고 비하하고 무시하겠는가?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결점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오히려 타인을 모욕주고 그럼으로서 자신의 우월감과 존재감을 확인하려 들기 쉽다.

그렇기에

타인을 함부러 모욕주는 사람은 어쩌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 역시 열등감과 자기비하에 시달리는 불쌍한 영혼일 수 있다,

칼융은 이렇게 말했다.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은 그 사람의 운명이 될 수 있다“

그렇다.

타인에게 함부러 모멸감을 주는자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자존감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고 생기고 고양되는게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영향을 받고 자기 스스로를 의식하고 평가하게 만들어져 있다.

즉 진짜 자신이 주변 사람으로부터 괜찮은 사람으로 대우를 받아야지 자존감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지킴으로 가족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때 그때 비로소 자존감이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자존감이 강해진다.

 

손쉽게 가짜 자존감을 구하려 하지마라!

명품으로 휘감고, 럭셔리 차를 구매하고, 잘난척하고 부자인 척 한다고 진짜 자존감이 강해지는건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은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않는가?

자신을 속이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진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당신이 마주한 책임을 회피하지말고 직시하고 받아들이라!

자신은 흥청망청살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고 남탓하고 핑계만 댄다면,

얄량한 자존심은 지킬수 있겠지만 진짜 자존감을 가질 순 없다

 

운동을 하고,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직장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장과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자존감을 키울 순 없다.

책임을 다하고 성실해야 존중받고 사랑받고 자존감도 강해질 수 있다.

자존감이 강해지면 피해의식으로 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타인의 별뜻없는 지난가는 말에 혼자 예민해져서 상처받고 주눅들지 않게 된다.

자존감이 강해지면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된다.

”내 나이 얼마에 얼마의 자산인데, 이만하면 어떤가요?“

이런 질문을 까페에서 하지 않게 된다.

자존감이 강해지만 타인에게 모욕을 주지 않고서도 스스로 존재감을 충만하게 느낄수 있다,

그래서 악플도 달지 않고 타인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자존감이 높으면 부자되기도 쉽다.

난 옷사는데 별로 흥미가 없다.

운동복을 제외하고는 내가 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아내가 다 사주었다.

물론 내가 개털이여서 비싼 옷을 살 형편이 안된 이유도 있었겠지만

충분히 돈이 생겼어도 옷이나 시계나 뭐 그런 것에 별로 흥미가 없다.

난 부자처럼 보이기 보다 진짜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난 불확실한 상황에서 배팅을 다른 사람보다 용감하게 잘한다고 친구는 말해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생각해보았다.

내가 찾은 해답은 난 내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난 왜 내 자신을 믿을수 있었을까?

난 내가 생각하기에 꽤 괜찮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기에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투자를 할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난 자존감이 강했고

그 자존감이 나를 부자되기 쉽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카카오 가치하기에서 자존감 테스트하는게 있어 재미로 해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https://together.kakao.com/hello/1/test

 

난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나왔다.

 

 

 

내가 왜 자존감이 강하게 되었을까?

내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유는 내가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자녀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자존감이 강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당신의 남편, 아내 그리고 자녀가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많이 사랑해주어야 한다.

화초조차도 그렇다.

사람이야 말할게 뭐 있나?

결론은 무엇인가?

사랑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것이다.


[출처] 우주초고수다. 인정욕구, 모멸감 그리고 자존감에 대해서 (부동산 스터디') | 작성자 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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