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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중심으로 미디어 읽기 본문
- 미디어media의 어원은 중간을 뜻하는 '미디움medium'이다. 한문으로 하면 매체 媒體,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릴 줄 아는 눈을 만들어준다."라고 말했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더 깊어지고, 더 영리해지고, 더 많은 사람과 이어진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정보와 생각을 얻으려면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미디어를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쏟아지는 미디어의 내용을 그저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디어의 내용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더 깊게 하는 것, 바로 '미디어 읽기'다.
- 독서교육의 권위자 돌로레스 더킨 교수는 '읽기'를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 정의했다. 문자뿐 아니라 그림이나 영상, 말투, 음악에서도 우리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읽기라고 할 수 있다.
-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읽고 쓰는 능력'이란 의미의 리터러시literacy와 미디어가 합쳐진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 새로운 소통수단이 생기면 곧바로 이해하고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사실 쉽지 않다. 매 순간 변화하는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상 문화, 디지털 문화를 외면하다가는 또 다른 문맹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맹은 TV를 볼 줄 모르는 사람, 영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 책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이미지나 연출에 담긴 메시지를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 피상적 내용만 파악하고 안에 담긴 의미는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 이를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의미를 구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시대의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통에 활용되는 미디어나 유틸리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사람,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거나 창의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미디어 문맹은 치명적이다. 세상이 정보화 사회를 넘어서 초연결 사회로 진화하고, 단순노동을 점점 더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를 통해 배우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약점이기 때문이다.
- 미디어 활용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두 패러다임이 모두 중요하다. 무조건 배척하거나 막무가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균형잡힌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이제 특정 천재 몇 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창조성을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는 스스로의 의지로 생각하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비범한 능력이기보다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인간미'에 속하게 될 것이다.
- '과잉의 시대'에 스스로 절제하며 즐기는 것도 미덕이다. '빨리빨리'의 논리에서는 이 책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이 사치일 것이다. 작품을 읽고 생각할 시간, 질문할 시간, 토론할 시간, 다른 매체와 비교할 시간, 변형하고 창조할 시간, 이 시간들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유 없는 '빨리빨리'의 강박은 벗어나길 바란다.
- 유명한 고전, 남들이 다 좋다는 명작이라도 내가 의미 있게 읽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을 내 안에 받아들일 때 그 작품은 비로소 내게 가치를 갖는다. 갑을 따질 수 없는 보석이든, 조금 기억에 남는 돌맹이든, 동전 한 닢이든,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나의 몫이다.
- 퍼즐을 잘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퍼즐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그럼 좋은 퍼즐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긴 작대기나 반듯한 네모를 기다린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시작한 순간이 아니고서야, 항상 그런 퍼즐이 좋을 수만은 없다. 지금까지 쌓아온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판판하든 들쭉날쭉하든, 내가 살면서 쌓아온 기반이 기준이 된다. 이 기반에 맞는 퍼즐이 좋은 퍼즐이다. 여기서의 기반이 앞에서 말했던 '나의 상황과 목적'이라고 할 수 있고, 좋은 작품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 공감은 내가 하는 것이고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누가 저절로 쥐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본 것에 가치를 부여하자. 다른 사람이 무엇을 보는지, 저 사람이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렇게 인생도 주어진 것에 휘둘리지 않고,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주체적으로.
- 책을 읽고 난 후의 인상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이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기 마련이니까. 심지어 완전히 새로운 장면, 아무도 밑줄 치지 않았던 장면에 대한 발견 또한 모임의 묘미이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감상을 꺼내고 들이대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작품을 읽는 재미도 나의 감성도 풍성해진다.
- 꼭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TV에서 보여주는 내용들을 받아들일 때는 자기만의 관점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와 뉴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미디어가 보여주는 사실이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명맥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건을 다룰 것인가, 혹은 다루지 않을 것인가는 모두 주관이 개입된 것이기 때문에, 무존건적인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만나며 인연을 만들어간다. 또 하나의 사회는 가상의 사회나 현실에서의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다른 현실이다. 이렇게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다중사회'적 속성은 우리의 삶에서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어떤 특정 색을 띠곤 한다. 이것을 개인의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은 정해져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본 색을 표현한다. 나는 그것을 환영한다. 아무 색이 없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모든 색을 잡아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잘 융합하면 또 다른 색을 찾을 수 있지만,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섞으면 검고 탁한 색이 될 뿐이다.